몽생미셸(Mont-Saint-Michel),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곳은 프랑스 어딘가에 붙어 있는 미지의 땅이었다. 여행 책자를 뒤적이면서 ‘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구나..’라며 감탄하면서도 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섬 전체가 수도원으로 이뤄져 있는 독특한 구조, 역시 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을 만큼 아름답고 유서 깊은 곳. 보는 이들을 전율하게 만드는 야경, 그곳에 가본 사람들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여전히 몽생미셸은 상상의 영역이었다. 일단 (파리에서) 너무 멀었다. 차로 이동해도 4시간 30분~5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였다. 쉬지 않고 달려야 그 정도였다. 렌트를 하긴 버거우니 결국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데, 얼마나 걸릴 지 계산조차 되지 않았다. 피로도를 산출하는 건 더 어려웠다. 당일치기로 다녀오려면 너무 빠듯했고, 환상적이라는 야경을 볼 수 없다면 뭔가 김이 샐 것 같았다. 



게다가 하절기를 향해 가는 유럽은 밤 10시가 돼야 겨우 어두워지기에 야경을 보고나면 대중교통은 끊어졌다. 정리하자면 (야경을 볼 거라면) 몽생미셸은 당일치기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숙박을 하자니 과연 몽생미셸에 1박 2일의 일정을 배정하는 게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이 모든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 준 건 ‘여행 업체’였다. 자존심(?)은 좀 상했지만, 몽생미셸을 가기 위해선 불가피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파리 크레파스, 유로 자전거 나라, 인디고 트래블 등 다수의 여행 업체가 검색된다. 대표적인 곳을 몇 개 골라 일정과 가격을 비교해 보면 금세 답이 나온다. 화, 목, 토만 출발하는 업체도 있으니 여행 일정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개인적으로는 파리 크레파스와 계약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떤 업체를 선택하든 무방하다. 일정이야 거기서 거기이고, 제공되는 서비스도 모두 비슷하다. 


야경이 일정에 포함돼 있는지, 어느 쪽이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있는지만 고려하면 된다. 이벤트를 하고 있는 업체가 있다면 좀더 저렴히 다녀올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야경 포함 12만 5천 원이었는데, 여기에 수도원 입장료(와 로컬 예약비) 15유로와 저녁 식사비가 추가된다. 파리에 새벽에 도착하기 때문에 숙소까지의 샌딩 비용도 따로 지불해야 한다. 역시 업체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오히려 중요한 건 가이드인데, 복불복이라 방도가 없다. 20대 여성부터 40대 아재까지 폭이 굉장히 넓은데, 2명씩 팀을 이뤄 움직인다. 아무래도 성심성의껏 열정을 갖고 가이딩을 해주는 가이드가 고맙기 마련이다.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면서 설명을 재미있게 해준다면 더할나위 없다. 나의 경우에는 40대 아재 팀이었는데, 중구난방식의 설명과 맥이 빠지는 분위기 때문에 애를 먹었다. 


일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07:00 파리(개선문)에서 출발, 10:00 에트레타 도착, 12:00 옹프뢰르 도착, 16:00 몽생미셸 도착, 19:30 저녁, 22:00 야경, 22:30 파리로 출발, 02:00 파리 도착’이다. 아침 7시에 시작해 다음날 02:00(라고 돼 있지만, 그 시간에 도착하는 건 어렵다. 실제로는 02:30이 훌쩍 넘었다.)에 끝나고 총 3곳(에트레타, 옹플레흐, 몽생미셸)을 들리는 강행군이다. 


프랑스에서는 법적으로 운전기사의 운전시간을 제한함으로써 장시간 운전을 막고 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운전기사들은 2시간마다 15분 가량의 누적 휴식을 취해야 하고, 4시간 이상 운전을 하게 되면 15분과 30분(누적)을 더해 2번 휴게소를 들러야 한다고 한다. 시간은 다소 지체되겠지만, 운전기사의 컨디션이 보장돼야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수적인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 설명이 길었다. 본격적으로 몽생미셸 투어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에트르타(Etretat)였다. 아침부터 먹구름이 밀려 오더니 어느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폭우처럼 쏟아붓는 게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에트르타는 해안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이 사랑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모네는 이곳을 7차례 방문한 끝에 <에트르타의 거친 바다>라는 작품을 그려냈다. 


조그만 마을을 통과해 해안가로 나오면 양쪽으로 절벽이 펼쳐진다. 에트르타에는 코끼리 절벽이 유명한데, 정말 신기하게도 그 형세가 코끼리를 꼭 닮았다. 큰 절벽을 엄마 코끼리, 작은 쪽은 새끼 코끼리라 부른다. 절벽 위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금세 숨이 차는데, 갑자기 웬 등산인가 싶다가도 뒤돌아서면 펄쳐지는 장관에 입을 다물 수 없게 된다. 절벽 위에 서서 바닷가를 바라보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갈 길이 멀어 에트르타에 오래 머무를 수는 없다. 1시간 남짓의 자유 시간 후 버스에 올라야 했다. 그렇게 다시 4, 50분을 갔을까? 빗방울은 조금씩 굵어졌고, 공기는 더욱 촉촉해졌다. 작은 항구 도시 옹플뢰르(Honfleur)에는 안개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었다. 작고 아담한 항구에는 보트들이 옹기종기 정박해 있고, 건물들은 저마다 형형색색 매력을 뽐냈다. 


큰 교회를 중심으로 얼키설키 뻗어있는 골목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다. 골목을 따라 상점과 갤러리가 늘어서 있었는데, 그 아기자기함이 마레 지구와 로지에르 거리에 못지 않았다. 오히려 로지에르 거리는 평범하다고 여겨질 만큼 옹플뢰르의 골목들은 개성 넘쳤다. 곳곳에 위치한 작은 갤러리들은 옹플뢰르가 인상파 화가들의 도시이자 예술의 도시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인상파의 탄생을 알린 모네의 역사적인 작품인 <인상, 해돋이>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르아브르와 옹플뢰르의 앞바다인데, 그만큼 옹플뢰르는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에게 매우 중요한 장소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몽생미셸보다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곳이다. 한번 더 가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주저없이 옹플뢰르를 선택할 것이다. 다만 그때는 날씨가 화창했으면 좋겠다. 


자, 이제 우리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 출발할 시간이다. 또, 한참을 달려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잠이다. 그러나 내부가 생각보다 쾌적하지는 않다. 좁고 불편하다. 그래도 대부분 잘 잔다. 잔다기보다 골아떨어진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예정보다 좀 늦은 17시 무렵 드디어 몽생미셸에 도착했다. 멀찌감치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기묘한 건축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에 취했던 사람들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다.



노르망디 해안에 위치한 몽생미셸 섬. 몽(mont)이 산[山]을 뜻하니, 성 미카엘의 산인 셈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원형인 이곳은 섬 전체가 수도원으로 이뤄져 있다. 8세기 무렵 아브랑슈의 주교인 성 오베르가 꿈에서 대천사 성 미카엘의 명을 받아 작은 예배당을 세웠는데, 그 때부터 몽생미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이었던 건 아니고, 800년에 걸쳐 조금씩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쳤다. 


몽생미셸은 조수 간만의 차가 매우 심한데, 만조일 때는 완전한 섬이 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야경이 아름다운 관광의 명소쯤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이 곳은 중세 시대의 대표적인 성지순례 장소이다. 지금에야 자동차를 통해 손쉽게(?) 올 수 있게 됐지만, 중세 시대에는 이 곳에 접근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도전이었을 게다. 지금도 수많은 종교인들이 저마다의 염원을 갖고 몽생미셸을 찾고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이 섞인 몽생미셸 수도원은 보고 또 봐도 굉장히 아름답고 경이롭다. 한편으로 매우 이질적인 건축물이기도 하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본 느낌이랄까. 건물 자체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수도원 위에 오르면 내다 보이는 풍광은 소름이 돋을 정도다. 그 아름다움은 즐거움과 흥분을 넘어 경건함에 이른다. 이곳에 몸을 담은 수도사들은 매일같이 이런 풍경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었을 게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수신기를 통해 듣는데 음질이 썩 좋지 않다. 또 집중이 잘 되지도 않는다.) 수도원을 한바퀴 훑고 나서, 저녁을 먹기 위해 셔틀 버스를 타고 다시 몽생미셸 수도원을 빠져 나왔다. 앞서도 설명했지만, 10시가 돼야 겨우 해가 지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나서도 한참이나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은 휴식 등 개인 정비를 해도 좋고, 함께 투어에 참여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보내도 좋다.



길고 길었던 기다림이 끝나고, 드디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잔잔히 깔리고 있었다. 드디어 몽생미셸의 야경을 보는 것인가. 기대를 품고 셔틀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하늘의 장난이란 말인가. 잠시 그쳤던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게 아닌가. 결국 사진을 몇 장 찍지도 못하고, 불어닥친 강풍과 소나기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서둘러 셔틀버스에 올라 빠져나오면서도 눈은 몽생미셸에 고정돼 있었다.


길었던 하루가 끝나고, 다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몽생미셸에서 파리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파리에 당도할 무렵, 가이드가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공연장 근처에서 흉기 테러가 발생해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알려줬다. 파리 시내는 비상사태였다. 덩달아 여행자들의 마음도 싱숭생숭해졌다. 그날 몽생미셸을 다녀오기로 한 걸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씁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어쩌겠는가. 그래도 여행은 계속돼야 하는 것을..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