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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조합이 최선인가요? 남성 MC 돌려쓰는 예능이 지겹다

너의길을가라 2018. 5. 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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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 식상함을 넘어 지겹다. 넌더리가 난다. 무려 87개(4월 기준)의 예능 프로그램이 전파를 타는데, 채널을 아무리 돌려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유명 예능인들의 다작 출연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볼까. 전현무는 고정 출연만 9편이나 되고, 이상민은 총 11개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김구라도 11개로 ‘다작왕’으로 이름을 올렸다. 


출연 작품이 많으면 그만큼 (그들끼리) 만날 확률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비슷한(심지어 똑같은) 조합의 MC들이 여러 프로그램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방송사와 제목을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오해할 정도다. ‘그 밥에 그 나물’, ‘돌려막기’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들이 대체불가의 존재라서? 아니면 예능계의 인력풀이 밑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얕기 때문일까. 


당사자들은 서운할지 모르겠지만 전자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대체불가라고 믿는 방송국 관계자가 있을 뿐이다. 후자는 좀더 현실적인 이유겠지만, 그 또한 새로운 인재를 발굴하기보다 익숙한 선택지를 고르는 방송국 관계자들의 게으름을 보여줄 뿐이다. ‘이 멤버들이면 안정적이겠지?’, ‘대박은 못쳐도 쪽박은 아닐 거야.’와 같은 무사안일주의가 예능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MBC <무한도전>의 빈자리를 채울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뜻밖의 Q>가 확정됐다. ‘퀴즈를 통한 세대 공감 프로젝트’를 표방한 이 예능은 5월 5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데, MC로 이수근과 전현무를 내세웠다. 그밖에 은지원, 유세윤 등이 ‘Q플레이어’라는 이름으로 출연할 예정이다. 너무도 낯익은 이름과 조합이다. 뜻밖의 상황 속에 퀴즈를 풀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벌써부터 눈에 훤하다. 


엠넷은 5월 4일 새로운 음악 예능 <더 콜>을 선보인다. 대한민국 대표 아티스트들이 콜라보를 원하는 상대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경쟁을 뚫고 성사된 커플은 신곡 제작에 나서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MC가 누구인가 보니 유세윤과 이상민이다. 제작진은 "유세윤, 이상민은 <너의 목소리가 보여>를 비롯한 여러 프로그램에서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찰떡 같은 케미를 보증하는 조합”이라고 치켜세운다. 


정형돈과 데프콘의 하차 후 새롭게 재정비에 들어간 MBC에브리원 <주간아이돌>은 유세윤, 이상민, 김신영을 MC로 발탁했다. 김신영이 포함돼 있긴 하지만, 역시 익숙한 이름과 식상한 조합이다. 앞서 넌더리가 난다고 한 건 과장이 아니다. 유세윤과 이상민은 tvN <방송국의 시간을 팝니다>에 함께 출연했었고, 이수근은 이미 SBS <마스터키>에서 전현무와 함께, <아는 형님>에서는 이상민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 예능계는 매우 제한적인 인력풀을 가동하고 있고, 이들간의 조합을 조금씩 달리하는 수준에서 ‘새로움을 추구’하고 있다(며 자위하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대부분 ‘남성’이다. 지난 4월을 기준으로, 방송 중인 87개의 예능 가운데 25개의 프로그램에 여성이 한 명도 출연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겨레, 김생민 성추행에 송은이·김숙도 하차하는 현실이 말하는 것) 남녀 성비는 72 대 28에 달한다. '남탕 예능'이라 불러도 할 말이 없다. 


여성은 기껏해야 ‘홍일점’으로 소비되거나 ‘걸크러시’로 포장된다. 그마저도 남성적 시각에서 다뤄진다. 영화에서 양성평등을 가늠하는 지수인 벡델테스트를 예능에 적용하면 그 결과는 영화 못지 않게 참담할 것이다. 방송국의 변명은 매번 같다. 리모컨의 주도권이 여성에게 있으므로 남성 MC가 필요하며, 현재의 예능 시스템에선 남성 MC들이 경쟁력이 있다고. 무엇보다 실력 있는 여성 MC가 없다고. 



그 변명은 옳을까.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밥 사주는 누나’ 이영자가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고, 송은이와 김숙도 여전히 시청자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 김원희나 박미선 등의 경쟁력은 누구 못지 않다. 신봉선, 박지선, 안영미 등 자신만의 캐릭터가 뚜렷한 조력자들도 많다. 그럼에도 남성 위주의 뻔한 캐스팅으로 일관하는 방송국과 제작진은 스스로 고민없음을 자백하고 있는 셈이다. 


시인 윤동주는 쉽게 쓰여진 시를 두고 부끄럽다고 했다. 별다른 고민 없이 계속해서 쉽게만 만들려 하는 방송국 예능 관계자들의 반성과 각성이 필요해 보인다. ‘끼리끼리 문화’, ‘우리가 남이가’로 이어지는 구태가 불편한 시점에 이르렀다. 반드시 여성 MC 위주가 아니더라도 좋다. 최소한 보고 또 봤던 남성 MC들을 돌려막기하는 꼴은 그만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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