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저녁에도 관객들이 꽉 들어찼다. <리틀 포레스트>는 사이즈가 큰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멀티플렉스에서 작정하고 밀어주는 영화도 아니다. 순 제작비 15억 원의 저예산 영화다. 이 작은 영화를 보기 위해 발걸음을 한 사람들, 애정이 가득한 그들 속에 함께 있는 기분이 제법 좋다. 게다가 영화관을 나서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다. 영화를 보고 머리가 맑아진 건 나뿐이 아니었나 보다. 


지난 7일, <리틀 포레스트>가 손익 분기점(80만 명)을 넘겼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누적 관객 수는 860,572명(8일 기준). 100만 돌파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비수기라는 점도 한몫 했겠지만, 역시 영화의 만듦새가 뛰어나다. 좋은 영화는 입소문을 타기 마련이고, 관객들이 찾게 돼 있다. <리틀 포레스트>는 언제 개봉했더라도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을 영화가 분명하다.



"다들 바쁘게 시간을 보내니 사는 의미를 잘 느끼지 못해요. 내일도 모레도 계속 바쁘죠.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보리밭을 거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보리밭에 부는 바람을 맞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보리밭에 앉아도 보고 그 사이를 걷기도 하면서 자신의 삶을 생각해보고 이를 계기로 (삶이) 나아질 수 있길 바라요." <조이뉴스24>, '리틀 포레스트' 임순례 감독, 도시 속 현대인에 전하는 선물


<리틀 포레스트>는 김태리의 영화다. 그가 연기한 혜원은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한다. 카메라는 줄곧 혜원의 동선을 좇는다. 시험, 연애, 취업. 청춘의 무게인지 청춘을 짓누르는 이 시대의 무게인지 알 수 없지만, 혜원은 그 압박감에 숨막혀 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지만, 삶의 색채는 바래져만 간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고 싶어서, 그 허기 때문에 혜원은 고향인 의성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엄마(문소리)와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한다. 또, 오랜 친구인 재하(류준열)와 은숙(진기주)을 만나 특별한 시간들을 만들어 나간다. "태리 씨 말고는 다른 배우들이 많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임순례 감독의 말처럼, 김태리는 꾸밈없는 연기와 포장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으로 혜원이라는 캐릭터와 완벽한 일체감을 보여 준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형형색색 빛나는 자연과 음식을 제외하면) 단연 김태리지만, 흔들림없이 듬직하게 <리틀 포레스트>를 지탱하고 있는 류준열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연기한 재하라는 캐릭터는 결코 튀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존재감이 약해서도 안 되는 중요한 인물이다. 한순간에 강렬하게 빛나는 연기보다 힘을 배분해서 전체적인 분위기 속에 스며드는 연기가 훨씬 더 어려운 법이다.


은숙이 처음부터 고향에 남아 있었다면, 재하는 서울에서 생활을 하다가 귀농했다. 그가 경험했던 회사 생활은 인격 모독에 가까웠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수동적인 것이었다. 피동적인 삶에 환멸을 느낀 재하는 고향으로 돌아왔고, 스스로의 삶에 주체성을 부여한다.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인간의 의지와 몫을 명확히 알고 있는 굉장히 강인한 인물이기도 하다. 



"모든 온기가 있는 생물은 다 의지가 되는 법이야." 영화 속 재하의 대사

 

한번의 과도기를 겪어냈기에 재하는 혜원에게 든든한 친구가 되어 준다. 물론 끈적이지 않는 삼각관계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류준열은 "쉬는 기분으로 촬영했고, 그런 마음을 관객들이 함께 느끼길 바랐다"고 말했지만, 임순례 감독은 그에 대해 "자신의 역할에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임하고, 연기에 있어서는 열정과 애착을 가진 발전 가능성이 큰 배우"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2015년 tvN <응답하라 1988>을 통해 혜성처럼 나타나 '어남류' 열풍을 이끌었던 류준열은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켜 나갔다. 인기에 안주하거나 특정한 캐릭터에 머무르기보다 과감하게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MBC <운빨 로맨스>에서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고, <더 킹>에서는 조직 폭력배 최두일 역을 맡아 들개와 같은 카리스마를 과시했다. 그런가 하면 <침묵>에서는 찌질한 스토커 연기를 실감나게 보여주기도 했다.



놀라운 건 어떤 역할을 맡아도 거북함 없이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라. <택시운전사>에서 류준열은 영락없는 80년대 대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질감 없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해낸다는 건 류준열이라는 배우가 지닌 역량이 뛰어나다는 방증이다. 또,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그만큼 뜨겁다는 뜻이리라. 더욱 경이로운 사실은 젊디 젊은 그가 '분량', '타이틀' 같은 부차적인 것에서 자유로워보인다는 것이다.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식감과 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전달하는 <리틀 포레스트>. 오감을 만족시키고 따뜻한 힐링을 선물하는 이 영화에 류준열이 있음을 기억하자. 아니, 영화를 보면 그를 쉽사리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잔잔하게 그리고 깊이 스며드는 그의 연기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류준열의 시대는 이제 막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