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네 남은 인생의 첫 날이다."


트리 겔브만(제시카 로스)은 화끈한 파티를 좋아하는 캠퍼스 최고의 퀸카다. '교과서'적인 윤리의 관점에서 보면 그의 삶은 비틀어져 있다. 오로지 즐기고 탐닉하는 삶을 추구한다. 여러 남자를 무분별하게 만나고, 심지어 유부남인 교수와 은밀한 관계를 맺는다. 룸메이트는 그런 트리에게 '경고'를 보내지만, 트리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뿐인가. 가족의 중요성을 모르고, 친구의 소중함도 모른다. 자신이 잘난 맛에 제멋대로 살아가는 철부지 대학생이랄까. 



어김없이 뜨거운 파티로 밤을 보냈던 트리는 '평범한' 남학생 카터 데이비스(이스라엘 브루사드)의 기숙사 방에서 눈을 뜬다. 이윽고 아빠의 전화가 걸려오는데, 벨소리가 생일 축하 노래로 바껴 있다. 과음을 한 탓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오고, 두통약을 먹으며 상황을 파악한 트리는 '똥을 밟았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내가 왜 여기, 그것도 이렇게 별로인 남자의 방에 있는 거야?' 트리는 허겁지겁 소지품을 챙겨 자신의 숙소로 돌아가고, 다시 강의실, 파티장으로 이어지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데 당혹스럽게도 트리는 아기 얼굴 가면을 쓴 누군가에게 살해 당한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다음이다. 죽음을 맞이한 순간, 그 고통을 간직한 채 트리는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카터의 방이다. 악몽이라도 꿨던 걸까? 이상하게도 똑같은 일들이 반복된다. 단순한 기시감일까. 이미 경험했던 하루를 반복해서 살아가던 트리는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또 한번 살해 당하게 되고, 그제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자신이 기묘하고 끔찍한 '오늘'에 갇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해피 데스데이>는 주인공이 세상에 태어난 날인 생일날 죽음을 당하는데, 그 하루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설정을 취하고 있다. 이제는 흔하디 흔한 '타임 루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공포라는 장르에 예상 밖의 유머가 버무려지면서 톡특함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각본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랜던이 감독을 맡았는데, "이번 영화에서 유머와 공포, 두 장르를 똑같이 중요하게 다뤘다"던 그의 선언은 헛되지 않았다. 영화는 적어도 영화적인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지루하지 않다.


트리는 가면을 쓴 살인범을 찾아내지 않으면 이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범인을 찾기 위해 주변의 의심스러운 인물들을 추적해 나간다. 만약 용의자의 뒤를 밟고 있는 중에 가면을 쓴 범인이 나타나면 추적하고 있던 이름을 용의자 목록에서 빼버리는 식이다. 이런듯 여자 주인공이 겁에 질려 있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태도는 굉장히 신선하다. 또,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범인과 맞서 싸우는 모습도 짜릿하다. 



한편, <해피 데스데이>는 '성장' 영화다. 트리는 무려 16번을 죽는다. 그 말은 17번 살아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리는 똑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경험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나라는 존재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하게 될 뿐 아니라 객관적으로 시선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되새겨보게 된 것이다. 죽음의 순간(죽음 그 자체는 트리에게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은 매번 고통스럽지만,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생일'이라고 하는 날이 갖는 상징적인 의미 아닐까. tvN <알쓸신잡>에서 유현준 교수가 대나무의 마디를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대나무가 가장 튼튼하고 높게 올라갈 수 있는 구조라는 설명을 한 대목이 떠오른다. 유 교수는 대나무의 마디 구조를 우리의 삶과 유비(類比)시켰는데, 끊김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우리의 삶에 '1년' 등의 구분(마디)을 지어둔 까닭은 중간중간 새로움을 다져야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겠냐는 것이 그의 요지였다. 주인공의 이름도 '나무'라는 뜻의 '트리'가 아닌가.



이제 트리는 과거와는 단절된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죽음 이후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그를 성장시킨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짚어봐야 할 부분은 '성장'이 자칫 잘못하면 '교정(矯正)'과 동의어일 수 있다는 점이다. 트리의 성장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의 삶이 잘못됐기 때문에 교정시키겠다는 개입은 불편한 일이다. 삶의 가치를 알고 사랑의 진실됨을 찾아가는 동시에 가족의 소중함과 친구의 중요함까지 깨닫는 전형적인 교훈은 너무 뻔하다. 영화적 번뜩임과 달리 내용적인 지루함은 그 때문이다. 


또, 개연성이 사라진 결말은 분노를 자극하기도 하다. '타임 루프'의 허술함이야 영화적 장치로 받아들이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범인'을 허투루 설정해둔 건 아쉽기만 하다. 뜬금없이 연쇄살인범이 등장한다거나 진짜 범인이 가진 살해 동기의 허무함은 짜증이 날 정도다. 그럼에도 <해피 데스데이>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는데, 1,127,392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 오피스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수익 1억 달러 돌파에 대한민국 관객들이 큰 기여(해외 시장 수익 1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