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여행의 핵심은 아무래도 구시가지, 술탄 아흐메트 지역이다. 이 구역은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됐을 만큼 찬란하고 아름다운 문화 유적지이자 지금도 치열하게 살아 숨쉬는 삶의 현장이다. 9월의 술탄 아흐메트 지역은 너무도 뜨거웠다. 쉼 없이 내려쬐는 햇볕과 수많은 여행객들이 뿜어내는 열기가 한데 엉겨 화끈하게 타올랐다. 그 와중에도 바닥에 엎드려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타오르는 신앙심은 이스탄불을 또 한번 가열했다. 아찔할 정도로 열렬한 도시, 이스탄불은 그런 곳이었다.



술탄 아흐메트 역(트램)을 내려오면 거대한 문화 유적이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술탄 아흐메드 공원을 기점으로 왼쪽에는 블루 모스크(Blue Mosque)가 위용을 자랑하고, 오른쪽에는 아야소피아 박물관(Ayasofya Camii Müzesi)이 고귀한 자태를 뽐낸다. 두 건물은 넋을 잃고 쳐다볼 수밖에 없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해서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순간 엄청나게 고민했다. 블루 모스크와 아야소피아 박물관 중 어느 곳을 먼저 방문할 것인가. 선택은 결코 쉽지 않았다.


'동선(動線)'이라는 반갑고 명쾌한 해답이 없었다면 한참동안 헤맸을지도 모르겠다. 블루 모스크가 왼쪽 끝에 위치해 있으므로 그곳을 먼저 들린 후, 아야소피아 박물관과 톱카프 궁전(Topkapı Palace)으로 향하는 게 합리적이라 판단됐다. 그제서야 고민을 접고 방향을 왼쪽으로 꺾어 블루 모스크로 향했다. 걸어가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탄성은 더욱 커졌다. 자연스레 입이 쩍 벌어졌다. 터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히는 곳답게 정말이지 장관이었다. 





이곳이 왜 이슬람 신자들에게 성지순례의 출발점일 수밖에 없는지 알 듯 했다. 이슬람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조차도 1616년 완성된 그 압도적인 건축물을 마주하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으니 말이다. 직경 27.5m에 달하는 대형 돔 1개와 여러 개의 작은 돔으로 구성된 지붕 그리고 6개의 미나레(Minaret)는 위압적인 힘을 뿜어냈다. 일반적인 이슬람 사원들의 미나레가 4개인 반면, 블루 모스크의 미나레는 그보다 2개가 많은 6개라 강렬함이 더욱 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왜 블루 모스크의 미나레는 6개인 걸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① 건축가가 '황금'(알툰)을 '6개'(알트)로 잘못 알아 들었다. ② 사우디아라비아 메카(Mecca)에 있는 카바 모스크의 미나레가 6개였기 때문이다  건너편에 위치한 아야소피아 박물관(동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지어졌다)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무엇이 맞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블루 모스크 건축을 명했던 제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가 비잔틴 제국이 세웠던 아야 소피아를 의식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외부에서 느꼈던 감동은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 짙어진다. 안쪽은 무려 21,043장의 타일과 250개가 넘는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돼 있다. 푸른빛의 타일은 그곳의 이름이 블루 모스크였다는 걸 되새기게 만들고,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햇살은 화려하게 빛난다.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위세와 함께 이슬람교의 자긍심이 느껴진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신발을 벗어야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온갖 종류의 발냄새가 진동을 한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알라의 힘으로 극복할 수밖에.   


블루모스크 앞쪽의 기다란 터가 있는데, 그곳의 이름은 히포드롬(Hippodrome)이다. 로마의 황제 세비루스(Severus) 시절에는 검투 경마장 터로 쓰였고, 나중에는 마차 경기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유적의 대부분이 파괴돼 남아 있지 않고, 이집시안 오벨리스크(obelisk)만이 덩그러니 세워져 있다. 기원전 16세기 이집트에서 가져온 디킬리타스(Dikilitas)와 콘스탄티누스 7세가 940년에 만든 오르메 수툰(Orme Sutun)이 과거의 영광을 홀로 대신하고 있다. 


아야소피아 박물관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내부


블루모스크를 나와 반대편으로 쭉 걸어가면 사각형 모양의 아야소피아 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예쁘게 가꿔진 공원을 지나가다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흐드러지게 핀 협죽도(유도화)가 눈길을 잡아끈다. 그 꽃길은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수 없는 강렬한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아야소피아 박물관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당인데, 360년 처음 만들어졌다가 화재로 소실돼 532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483~565)가 재건축을 시작해 537년 12월 비로소 완공됐다. 


이스탄불이 그 지리적 특성 때문에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것처럼, 아야소피아 박물관도 역사의 부침을 몸소 겪었다. 애초에 성당으로 지어졌고 그 역할을 충실히 해왔지만, 762년 서로마 제국과 가톨릭이 분리되자 그리스 정교회의 총본산으로 탈바꿈 됐다. 오스만 제국의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토플 점령(1453년) 이후에는 이슬람 사원이 되어야 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랄까. 성당 내의 모자이크(mosaic)들은 회칠이 덧입혀져 세상에서 지워졌다. 


1. 대리석으로 된 '천국의 문'

2. 성모 마리아(왼), 예수(중앙), 세례자 요한(오른)

3. 여황제 조에(왼), 예수(중앙), 조에의 세 번째 남편 콘스탄티누스 9세(오른)

4. 콤네노스 황제(왼), 성모 마리아와 예수(중앙), 부인 이레인, 아들 알렉시스우스(오른)


본당으로 들어가면 그 웅장함에 압도 당하게 된다. 중앙 돔은 지름이 31m, 높이가 55m에 달한다. 당시에는 내부 공사 중이라 완전한 모습을 볼 순 없었지만, 부분적으로 가려진 그 모습만으로도 위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공사 중이라 건물의 크기가 더욱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2층은 여성들이 기도하는 곳인데, 가마가 이동할 수 있도록 통로가 계단이 아니라 비탈길로 돼 있었다. 여기까지 가마를 지고 올라와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죄란 말인가.


아야소피아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2층에 있는 모자이크다. '천국의 문'을 통과하고 나면 회칠로 가려졌던 모자이크를 만날 수 있다. 앞쪽만 보고 정신없이 걷다보면 발견하지 못할수도 있는데, 문을 통과하고 오른쪽을 돌아보면 모자이크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테니 놓칠 염려는 없다. 혹시라도 가는 길에 보지 못했다면 돌아올 때 무조건 보게 되는 구조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훼손이 상당히 많이 됐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기만 하다.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됐던 곳에서 예수의 흔적이라니..


블루 모스크(위)와 아야소피아 박물관(아래)


블루모스크, 아야소피아 박물관. 단지 두 곳을 둘러보는 데만도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이질적인 두 공간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구도가 참으로 흥미로웠다. '내가 더 아름답고 웅장해!'라고 기싸움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대치(對峙) 아닌 대치가 이스탄불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 가려내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열을 가리는 건 불필요했다. 그저 공원 한 가운데의 벤치에 앉아 양쪽을 한번씩 바라보며 그 팽팽한 긴장감을 맛보는 걸로 행복할 따름이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톱카프 궁전을 비롯해서 모자이크 박물관, 터키-이슬람 미술 박물관, 고고학 박물관, 아야이레네 박물관, 예레바탄 사라이 등 둘러봐야 할 곳이 산더미다.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진 말자. 어차피 하루만에 끝낼 수 있는 일정이 아니었다. 잠시 한숨 돌리고 이스탄불 여행을 계속 이어나가 보도록 하자.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