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이는 것을 사실이라고 믿지만 그것이 사실일 수는 있어도 진실은 아닐 수 있다. <침묵>을 통해 사실과 진실이라는 문제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지우 감독)


흔히 사실과 진실을 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전자가 표면적이고 부분적이라면, 후자는 내면적이고 전체적이다. 단면적인 사실과 달리 진실은 통찰적이다. 둘의 관계를 쉽게 표현하자면, '보이는 사실 너머에 진실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사실들 가운데 진실을 찾아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어쩌면 '재판'이라는 과정이 사실과 진실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라는 생각도 든다. 유죄의 사실(증거)과 유죄가 아닌 사실(증거)들의 충돌 속에서 진실을 꿰뚫어 보는 선별이 곧 재판이 아니던가.


사실과 진실, 그 미묘한 간극을 이야기한 영화라고 본다면 <침묵>은 분명 수작이다. 정지우 감독은 사건과 인물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들을 영화 곳곳에 영리하게 배치함으로써 진실이 궁금한 관객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범인은 누구인가?', '임태산(최민식)의 진심은 무엇일까?', '유나(이하늬)는 정말 태산을 사랑했을까?' 스크린 밖의 관객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 속의 인물들도 혼돈을 겪는다.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들이 진실이라 믿는 사실들에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각자(가 믿은 진실)의 몫을 챙긴 채 살아간다.



또, <침묵>을 한 인물의 내면 속 감정을 이야기한 영화라고 보더라도 수작임에 틀림없다. 범인을 찾아간다는 점에서 법정극의 틀을 가지고 있지만, <침묵>은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얽히고설킨 인물들 간의 감정선을 강조하고 부각시킨다. 특히 임태산 역을 맡은 최민식은 중심적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다. 그가 보여주는 연기의 깊이는 <침묵>에 묵직함을 더하는데, 이 영화를 수작이라 말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힘의 8할은 최민식으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는 임태산의 로드 무비 구조를 취하고 있다. 사랑하는 약혼녀 유나가 살해당했지만, 그에겐 슬픔을 온전히 느낄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유력한 용의자로 자신의 딸 임미라(이수경)가 지목됐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이가 좋지 못해 반목했던 두 사람이 사건이 발생하던 날 만났다는 것이 검찰이 제시한 정황 증거였다. 사랑하는 연인을 딸이 살해했다? 이 상황적 딜레마에 빠진 임태산의 다양한 얼굴, 즉 최민식이 표현하는 다양한 감정들을 감상하는 재미가 정말이지 쏠쏠하다. 



임태산은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자신이 가진 재력과 권력을 총동원한다. 불법과 편법도 서슴지 않는다. 돈이 최고의 가치이며,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고 믿는 임태산에게 도덕은 하등 중요치 않다. 인맥을 동원해 담당 검사를 회유하고자 시도하고,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는 검사를 직접 찾아가 '검찰총장 자리를 사주겠다'고 유혹하기도 한다. 이러한 임태산의 모습들은 대한민국 재벌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 한데, 최민식은 그 뻔뻔스럽고 역겨운 얼굴을 누구보다 '열받게' 잘 소화해낸다.


그런가하면 사건의 진상을 추적해 나가던 중 '실체'를 맞닥뜨린 순간, 감정의 균열과 붕괴를 매우 섬세하게 표현했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한데 엉겨붙어 묘한 색채를 발한다. 매우 이질적이면서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또, 딸을 향한 지극한 '부성애'를 드러내는 장면들은 감동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관객들이 임태산을 '악인'이라 여기면서도 그를 마냥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만큼 최민식의 연기는 설득력 있게 파고 든다.



"<침묵>은 소중한 것을 잃은 한 남자의 뒤늦은 참회, 인생에서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최민식)


이처럼 <침묵>은 얽개와 연기 등의 측면에서 봤을 때 충분히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정지우 감독이나 최민식의 말처럼, '소중한 것을 잃은 한 남자의 뒤늦은 참회'라고 해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임태산은 딸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딸의 죄를 덮기 위해 진실을 조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범인이라고 주장한다. 임태산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감옥에 갇히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참회'라고 볼 수 있을까?


대신 감옥에 갇힌 만큼 극진한 '부성애'를 보여줌으로써 중년 남성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하는 <침묵>은 여전히 '그들만의' 해결책만을 강조하고 있다. 딸을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기보다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가부장제를 답습하고 있고, '목적이 정당하다면 옳지 않은 수단을 써도 된다'는 그릇된 윤리관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정당한 죗값을 치르고, 진정한 반성을 하는 게 아니라 아빠의 대속(代贖)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은 그 자체로 오만한 것 아닐까. 



'미안하면 잘 살아'라고 말하는 아빠의 속 편한 생각과는 달리 딸은 얼마나 많은 죄책감에 시달릴 것인가. 아빠가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갇혀 있는데, '미안하니까 잘 살아야지'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또, '혹시 진실이 밝혀지는 건 아닐까'라며 매일 밤 전전긍긍하며 보내지 않을까.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발을 뻗고 잠들 수 있을까. 과연 제대로 된,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쯤되면 과연 이 '참회'가 누구를 위한 참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그것을 참회라고 부를 수 있기는 한 걸까.


<침묵>이 제시한 '반전'은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임태산이 꺼내든 카드에 재판정의 모든 사람들이 쉽사리 동조해버리는 부분은 다소 의아했다. 치밀한 법정극을 쌓아왔던 영화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긴장감을 허무하게 놓아버린 느낌이다. 물론 자신이 믿고 싶었던 '진실'을 추구했던 이들이 임태산이 던진 미끼를 덥석 물었다고 본다면 불만은 없다. 하지만 임태산의 행동에 대해 해석의 여지를 제거하고 '참회'로 못박은 부분은 동의하기 어려울 뿐더러 이 영화의 가치를 대폭 떨어뜨렸다. 그래서 감히 수작이라 말할 수 없다.


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