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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듬 검사는 '몰카' 피해자가 아니라 '불법 촬영' 피해자입니다

너의길을가라 2017. 10. 1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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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마녀의 법정>은 검찰 내 가상의 부서인 '여성아동범죄전담부'를 전면에 내세운다. 원칙주의자인 민지숙 부장검사(김여진)를 필두로 피해자 중심주의를 외치는 여진욱 검사(윤현민)와 승소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이듬 검사(정려원)가 주축으로 활약하며 묘한 조합을 이룬다. <마녀의 법정>은 법정 수사 드라마 최초로 여성아동 대상 범죄만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현실적이고 적나라한 접근으로 '성범죄'가 판치는 대한민국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마녀의 법정>이 특히 흥미로웠던 건 역발상을 통해 현실을 조명했다는 점이다. (물론 생동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 정려원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었던 이유도 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진부하지 않았다. 가령, '여아부'의 첫 번째 케이스였던 '교수-제자 성폭행 사건'의 경우, 남성과 여성의 문제로 접근하기보다 교수와 제자(조교)라는 대학교 내의 '권력 관계'로 풀어나갔다. 또, 피해자를 성소수자로 설정함으로써 2차 피해에 대한 인식을 더욱 강하게 상기시켰다.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 두 번째 케이스에선 그 권력관계마저 비틀어버렸다. 무려 '검사' 씩이나 되는 마이듬조차도 성범죄에 너무도 쉽게 노출된 것이다. 마 검사는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사건의 피의자에게 모욕적인 성희롱을 당했고, 급기야 '불법 촬영'의 피해자가 됐다. <마녀의 법정>은 이와 같은 설정을 통해 '세상에 피해자가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잘못한 게 있어서 피해자가 되는 게 아니다.'는 메시지가 강력히 전달했다. 


하지만 흥미로웠던 역발상, 메시지의 강렬함에 비해 세밀한 표현에 있어 아쉬운 점이 눈에 띠었다. 가령, 민지숙 부장검사와 여진욱 검사가 피해자 신분이 된 마 검사에게 증거를 내놓으라고 압박(을 넘어 협박)을 가하는 대목은 불편하기까지 했다. 아무리 '검사' 신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알몸이 찍힌 영상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윽박지르는 건 상식 밖의 일이 아닌가. 더구나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에 대해 그토록 강조했던 드라마의 기조와는 완전히 딴판인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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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아쉬운 건 <마녀의 법정> 속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였다. 전 여자친구의 모습을 촬영해 인터넷에 유포한 김상균(강상원)은 더욱 대범하게 범행을 이어나갔다. 자신의 수사 검사인 마이듬의 집에 침입해 카메라를 설치한 것이다. 그리고 촬영된 영상을 가지고 마 검사를 협박했다. 일부 언론은 이와 같은 드라마 속의 범죄 행위를 표현하면서 '몰카(몰래 카메라)'라는 용어를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몰래카메라'라는 단어는 1991년 MBC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꼭지인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에서 유래됐다. 코미디언 이경규는 출연자들에게 그 어떤 고지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우 난감한 상황들을 연출하고, 그들의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몰래 설치해 둔 카메라로 촬영해 방송에 내보냈다. 지금에야 불편하게 여겨지는 방송 콘셉트지만,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몰카'라는 단어(뿐만 아니라 그 행위)를 사회적으로 유행시켰다. 


문제는 '몰카'라는 말이 '상대방의 동의 없이 타인의 신체를 촬영하거나 이를 배포하는 등의 성폭력 범죄 행위'를 담아내기엔 지나치게 장난스럽고 가볍다는 점이다. 또, 범죄의 심각성이나 해악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고통을 드러내기에도 현격히 부족하다. 그 출발점이 예능 도구였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최근 정부는 '불법촬영'이라는 용어로 '몰카'를 대체하기로 했다. 이것이 지난 9월 26일의 일이다. 고작 지난 달의 일이라 숙지를 하지 못했던 걸까. 



그러나 이미 '몰카'라는 용어에 대한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있었고, 그에 따라 '디지털 성범죄'나 '사이버 성폭력'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디지털 성범죄 등도 포괄적인 개념이라 완벽히 적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몰카'라는 용어가 자극적인 구석이 있어 시선끌기에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적확한 용법이라 말할 수는 없다. 범죄가 아닌 행위를 설명할 때는 충분히 사용 가능하지만, 범죄인 행위에는 '몰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 


너무 까탈스러운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확한 용어를 사용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고작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것으로도 '인식' 자체를 바꿔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식이 바뀌면 태도가 바뀌고, 그 변화는 곧 사회적 변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미 경찰도 '몰카' 대신 성폭력특별법 14조에 규정된 '카메라를 이용한 불법촬영범죄'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리벤지 포르노'란 용어를 퇴출시키고, '개인 간 성적 영상물'로 바꿔 사용토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언론은 대중에게 가장 쉽게 그리고 많이 노출되는 매체다. 그렇다면 언론이 더욱 조심해서 '용어'들을 가려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마녀의 법정>의 마이듬 검사는 '몰카' 피해자가 아니라 '불법 촬영' 혹은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다. '불법'과 '범죄'라는 명확한 의미가 들어간 이 용어들이 사회적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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