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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는 그녀>의 우아진, 자본주의 사회의 이상향이자 타협점

너의길을가라 2017. 7. 22.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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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정녕 전쟁이었다. 평화를 갈구하던 자에게도, 욕망을 갈구하는 자에게도, 전쟁은 불가피했다."


반환점을 돈 JTBC <품위있는 그녀>의 제2막이 시작됐다. 만인(萬人)의 워너비(wannabe)로 등극한 그녀, 우아진(김희선)은 철없는 남편 안재석(정상훈)의 무개념 행동에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새출발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욕망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던 박복자(김선아)는 대성펄프 집안의 안주인 자리를 공고히 하면서 기업 운영에 참여하기에 이른다. 한편, 첫째 며느리 박주미(서정연)은 박복자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고, '브런치 모임'의 상류층 사모님들은 대차게 한판 붙은 뒤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역시 전쟁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품위있는 그녀>는 기존의 드라마들과 달리 선과 악이라는 일차원적인 구도를 탈피하고 있다. 초반에는 '박복자 대 대성펄프 집안'이라는 대결 구도를 만들면서 박복자를 '밉상'으로 묘사하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싸움은 박복자 대 박주미의 것으로 축소됐다. 박복자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이자 적으로 예상됐던 우아진은 오히려 그 진흙탕에서 한 발 물러서버렸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를 위한 싸움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우아진은 박복자의 '롤모델'로 자리잡았고, 날이 갈수록 우아진의 진면목은 더욱 도드라졌다. 

 

 

"타격을 감수하고 정직하게 사과하는 방법이 가장 좋습니다. … 손해를 감수하시더라도 정면 승부하세요, 아버님. 그래야 살아요. 제품 특성상 이미 소비된 물품에 대해선 어쩔 수 없지만, 최대한 교환 환불처리하고 소비자들의 마음부터 달랠 필요가 있어요. 영수증이 없더라도 제품만 가지고 오면 처리가 가능하도록 조치부터 취하세요."


대성펄프 화장지에서 '형광 표백제'가 다량 검출됐다는 뉴스가 보도되자 안태동(김용건) 회장은 망설임 없이 우아진을 호출한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는 다른 이들과 달리 우아진은 침착하다. 명쾌한 상황 분석과 대처법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그 답안이 완벽하다. '타격을 감수하고 정직하게 사과하라', '손해를 감수하고 정면 승부하라.' 이를 듣고 있던 안태동 회장과 박복자가 고개를 끄덕였던 것처럼, 시청자들도 우아진이 얼마나 현명한 인물인지 다시 한번 탄복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안태동 회장은 우아진에게 전권을 맡기며 위기를 해결하라고 요청하지만, 이혼을 결심하고 있었던 우아진은 회사 문제에 나서지 않겠다고 못을 박으며 이혼 하겠다고 선언한다. 마음이 다급해진 안 회장은 "안 된다. 내가 사과할 테니까 이혼하지 마"라며 붙잡아보지만, 우아진은 통쾌한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아니요, 전 제 가치를 지키고 싶습니다. 저, 그 남자랑 살기 너무 아까워요." 안 회장은 다시 한번 매달린다. "재석이 회사에서 내치고, 재석이 주식 지분, 널 다 줄게" 우아진은 그 '매력적인 제안'마저도 걷어차고 자리를 떠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고,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하는 등 그야말로 '돈'으로 행할 수 있는 최상의 것들로 자신의 삶을 도배하고 있는 강남의 상류층들(만을 겨냥한 건 아니지만). '돈'이 지상 최고의 가치로 자리매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의 삶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과연 거기에 '품위'라는 게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대답은 'NO'에 가까울 것이다. <품위있는 그녀>는 '돈'이 곧 '품격'이라 여기는 저들의 '천민자본주의'를 까발리며, 그들의 민낯을 화끈하게 드러낸다. 


한편, 우아진은 독특하면서도 상징적인 캐릭터다. 속물적인 상류층들과 어울리면서도 '천박함'에 물들지 않았다.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도 예의를 갖추고 정중히 행동한다. 결코 함부로 하는 법이 없다. 매사에 똑부러지고, 흐트러짐이 없다. 그 판단력과 영민함은 감탄스러울 정도다. 우아진이 보여주는 모습들은 정말이지 그의 이름처럼 '우아하다'고 표현해야 마땅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게 된다. 심지어 천하의 박복자마저도 우아진만큼은 인정하고 조심스러워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의 주장처럼, 이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집어 버리지 않는 이상 지금의 세상에서 삶을 모색해야 한다. 아마도 우리는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정도의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라는 과격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코웃음'칠 일이지만, 어찌됐든 그 '따뜻한 자본주의'라는 것이 지금의 인류가 향하고 있는 목적지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불성실한 타협점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건 참으로 소박하다.

 

 

사회의 부를 틀어쥔 상류층이 최소한의 도덕 의식을 갖고, 상식적인 행동을 바라는 것이다. 우리들이 점차 심화되는 부의 불평등을 감수하(면서 약간의 불평을 늘어놓는)는 대신 너희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행하라고 요구하는 것 말이다. 정말이지 소박하지 않은가. 그래서 영리한 기업과 부유층들은 기부와 선행으로 '선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대중들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그건 저들에게 그리 어려운 요구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인심 쓰면서 칭찬받는 일 아닌가.


<품위있는 그녀>의 우아진을 보면서 감탄하다가도 한편으로 씁쓸한 이유는 그 때문일 게다. '우아진'은 소위 상류층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상냥한 부유층이라면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듯 하다. 또, 누구라도 '나도 우아진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매력적인 '이상향', 워너비로 반짝반짝 빛난다. 박복자조차도 우아진에게 빠져들고, 그처럼 되기 위해 벤치마킹을 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우아진'은 우리 사회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타협점일 것이다. 


"엄마가 그랬어. 상대방이 부족하다고 내가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내가 더 부족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우아진의 딸 지후는 이렇게 말한다. 우아진이 다른 상류층들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부족하다'는 기준과 판단의 근거가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품위있는 그녀>의 스토리가 '실화'라는 설이 제기되는 것처럼, 워낙 말도 안 되는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우아진이 빛나는 건 당연하지만, 그만큼의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고 감춰지는 건 분명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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