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던 MBC 소속 김소영 아나운서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몇 장과 그에 대해 달아놓은 짤막한 코멘트를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있다. 사진 속에는 남편인 방송인 오상진의 사뭇 진지한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안내문을 읽고 있었고, 심히 낙담한 포즈를 취한 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원래 진지한 편이지만, 더욱 진지해 보였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이제 김소영의 설명을 들어보자. 


"국제운전면허를 만들고 렌터카여행을 계획한 남자가 집 식탁에 면허증을 두고온 뒤 낙담하고 있다. 가장의 권위 안녕"


아, 이럴수가! 정말 열심히 그리고 야심하게 렌터카 여행을 준비했을 텐데, 국제운전면허증을 그것도 식탁 위에 놓고 오다니. 사진 속에 드러난 그의 낙담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래도 웃음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이렇듯 렌터카 여행을 계획했으면서도 국제운전면허증을 깜빡 잊어버린 채 여행을 떠날 만큼 의외로 허당인 그이지만, 6월 9일을 맞아 그가 결코 잊지 않았던 '이름'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고(故) 이한열, 1987년 오늘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결국 세상을 떠났던 이한열 열사였다. 


 - 오상진의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angjinoh) -


오상진은 9일 오전 자신의 SNS에 고(故)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한 장과 함께 "강권의 최루탄으로 젊은 생을 마감한 이한열 열사 선배님을 추모합니다. 더 나은 세상을 바랐던 이들의 모든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는 글을 남겼다. 당시 이한열 열사는 다음 날인 6월 10일 개최될 예정이었던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앞두고, 결의대회를 열고 난 후 시위를 하던 중에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에 의해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됐다.


불법 체포에 이은 고문으로 죽음에 이른 박종철과 최루탄을 맞고 쓰러진 이한열은 전 국민적인 분노를 자아냈고, 그 분노의 불길은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불길은 거침없이 타올라 걷잡을 수 없는 단계까지 퍼져나갔고, 결국 전두환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평화적 정권 이양을 약속하는 · 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사실상의 항복 선언이나 다름 없었다. 비록 그로부터 우리가 얻어낸 것이 고작 전두환 정권의 연장인 노태우 정권이었다는 것이 통탄스럽지만 말이다. 



22살에 맞이한 너무도 이른 죽음이었다. 이한열이 그토록 타도하고 싶었던 독재 정권의 원흉 전두환이 올해로 87세를 맞아 천수(天壽)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씁쓸하고 야속한 마음마저 든다. 6월 민주항쟁도 30주년을 맞이했고, 더불어 이한열의 죽음에도 30년이라는 세월이 켜켜이 쌓였다. 6월 항쟁 당시 고려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YTN라디오(FM 94.5) <신율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6월 항쟁은 1987년판 촛불 혁명이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한열, 지금 우리가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는 이름이다. 가슴 아픈 이름, 뼈아픈 이름이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이다. 그런 이름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희생이 무의미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상기'시켜준 오상진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누구인가. 대통령 투표를 하기 위해 신혼여행 일정을 조절해 권리이자 의무인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개념' 방송인이 아니던가. 



지난 4월 5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던 그의 모습을 기억한다.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을 다시 찾아 만감이 교차했던 듯 했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며 쌓여있던 회환을 어찌하지 못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건 단지 오상진, 개인의 눈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MBC의 참담함, 회사의 거대한 부정에 투쟁했던 그가 끝내 사퇴를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MBC의 현실에 대해 중첩된 복합적 성격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그가 이한열을 떠올렸듯이, 그리하여 우리가 이한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것처럼, 오상진의 이름도 대중들에게 소중히 기억되길 희망한다. 맑은 눈망울에 선한 얼굴의 오상진을 보면 여린 듯 하면서도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건 '옳고 그름'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을 가슴 속에 기억하고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역사를 잊지 않은 그가, 그 역사를 만들어 왔던 희생을 잊지 않은 그가 강하지 않다면 누가 강하다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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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