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박근혜'에서 '문재인'으로의 변화는 뚜렷했다. (상대적으로) 젊은 인사들이 '개혁'이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과감히 등용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임 수석들과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아 함께 식사를 하고, 그 후에는 참모진과 재킷 상의를 벗은 (비교적) 편한 옷차림으로 커피를 들고 청와대 소공원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눴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라며 이레적이라 설명했다. 폐쇄적 '군주'의 '구중궁궐'이었던 청와대의 공기가 한결 밝고 경쾌하게 변하고 있다. 



"제왕적 권력을 나누겠다. 확 바뀐 청와대를 보게 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공언은 말 그대로였다. 초반이긴 하지만, 이 흐름이 '보여주기'에 그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소탈한 그의 성향과 소통을 중요시하고, 탈권위를 강조하는 그의 평소 기조가 이를 뒷받침한다. 언론은 이러한 변화에 호들갑을 떨며 반응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이 '정상'이고, '기본'이다. 지난 9년동안 두 명의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가 그만큼 크다. 스스로 옷을 벗는 대통령이 화제가 되는 건 이번이 끝이길 바란다.


이처럼 청와대가 달라졌지만, 아직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지난 10일과 11일, 두 번의 인선(人選) 발표가 있었다. 10일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전남도지사)와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전 국정원 3차장), 임종석 비서실장(전 국회의원)을 소개했다. 11일에는 수석비사관 임명 발표가 있었는데, 임종석 비서실장이 조국 민정수석(서울대 교수), 조현옥 인사수석(이화여대 교수), 윤영찬 홍보수석(전 네이버 부사장), 이정도 총무비서관(현 기재부 심의관)을 차례로 소개했다.



이틀에 걸쳐 진행된 인선 발표에서 '어김없이' 취재진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국정원과 검찰에 대한 개혁은 문 대통령이 과거부터 거듭해서 강조했던 부분이기도 했고, 대한민국 사회의 워낙 큰 숙제였던 만큼 국민적 관심이 집중됐다. 당연히 그 선두에 서서 개혁을 지휘할 국정원장과 민정수석에 대한 궁금증도 컸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은 국민들의 관심과 궁금증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날카롭고 예리한, 그리고 집요한 '질문'으로 더 많은 생각을 끄집어내야 하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못했다. 두 가지 장면을 살펴보자.


1. 


"국정원장 후보자입니다만, 이제 후보자 타이틀을 벗으면 여러분 앞에 이렇게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 그래도 관심이 없으시면 그만 할까요?" (질문자를 찾던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에게 <오마이뉴스>의 이경태 기자가 "국내 정치 파트를 없앨 수 있을 것인지, 국정원에서 기존과 같이 셀프 개혁안을 제출한다면 그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라는 질문을 던져 대답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2. 


"동아일보의 OOO기자입니다. 과거 민정수석이 검찰의 수사자휘나 그런 측면에 원활하게 소통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측면에서는 어디까지 수사지휘를 하실 건지.."


"민정수석은 수사지휘를 해선 안 됩니다."


1번 장면에서는 가슴 속에 '답답함'이 차올랐다. '한심함' 때문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인터넷을 비롯한 SNS상의 여론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왜 질문을 하지 않는 거야!' 2번 장면에서는 '통쾌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민정수석은 수사지휘를 해선 안 된다'고 딱 잘라 대답한 조국 민정수석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우문현답'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바보 같은' 질문을 한 기자에 대해선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저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야!' 여러모로 기자들의 면이 안 서는 장면들이었다. 



만약 1번 장면과 2번 장면 중에서 더 심각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전자 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잘못된' 질문을 할 수는 있다. 아니, 해도 된다. 중요한 포인트는 질문을 '했다'는 것이지, 그 질문의 '질'을 따지거나 그 자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훨씬 나중의 문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문'에 '현답'이 나와 예기치 않았던 반전이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가장 좋은 건 '현문'에 '현답'을 하는 것이겠지만..) 실제로 현답이 나오지 않았던가. 


게다가 기자로부터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그 질문이 어떤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최대한 선해한다는 가정 하에) 어쩌면 한번 '떠보기' 위해 일종의 함정을 판 질문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질문을 하지 않는 것에는 그 어떤 의도도 파악되지 않는다. 그저 나태하고 게으른 것이다. 책임을 방기한 것이다. "그래도 관심이 없으시면 그만 할까요?"라며 질문을 '요청'하는 뻘쭘한 상황은 보는 사람이 오히려 낯이 뜨거워질 정도였다. 



또 한번의 '선해'를 해보자. 이해가 되는 측면도 있다. 그동안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질문하기'를 거세당한 채 9년(특히 지난 4년은 엄청난 억압을 받았을 것이다.)이라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질문은 완벽히 차단 당했고, '은총을 받은' 기자만이 '정해진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대본을 읽는 연기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까 질문을 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 셈이다. 자연히 머리를 굴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불행한 학습 효과라고나 할까. 그렇기 때문에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던 것이리라.


물론 질문을 원하지 않는 청와대의 분위기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건, 일반적으로 청와대 출입기자를 잘 거치고 나면 언론사에서 좋은 자리로 승진이 가능하기 때문에 '높으신 분'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뉴스타파>의 보도 참고) 이와 같은 '굴종'은 적어도 문재인 정부 하에서는 요구되지 않을 것이다. 180도 달라진 청와대 분위기만큼이나 앞으로는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기자들도 기존의 관성을 버려야 한다. 어쩌면 '편하게' 일했던 과거가 그리운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수의 기자들은 이 변화를 반가워 할 것이다. 참아왔던, 억제돼 왔던 '질문 본능'을 깨워 살벌한 질문 세례를 곧 시작할 것이다. 그리 믿는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또 질문해야 한다.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들이 궁금해 할 사안에 대해 '묻고' 대답을 '듣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자 책임이니 말이다. 단시간에 바뀌진 않겠지만, 밤새도록 질문과 대답이 오고가는 풍경을 곧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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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