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Prague)는 면적이 496㎢인데, 서울(605.25㎢)에 비해서는 좀 작고, 파리(105.4㎢)보다는 훨씬 큰 편이다. 그런데 여행(관광이라고 해도 좋다)의 다채로움은 두 도시에 비해 훨씬 더 단조로운 편이다. 하지만 그 간결함이 오히려 ‘아늑하다’는 느낌을 준다. 여러 곳을 바지런히 쫓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는 안정감을 주고, 그 때문에 여행의 깊이는 좀더 깊어진다.

 


프라하 여행은 기본적으로 ‘구시가’ 파트와 말라스트라나(Malá Strana: 소지구) 파트로 구성돼 있다. 두 지역 사이를 체코에서 가장 긴 강인 블타바 강(Vltava River)이 가로지른 채 흐르고 있는데, 강 위로 몇 개의 다리들이 놓여 있다. 그 중에서 ‘카를 교(Charles Bridge)’가 단연코 가장 유명하(고 아름답)다. 프라하를 여행하다보면 자연스레 이 520m의 낭만적인 다리를 여러 차례 건너다니게 된다.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을 쓴 정여울은 ‘같은 장소에 아무리 여러 번 가더라도 결코 질리지 않는 풍경이 있’다면서 그 예로 로마의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와 프라하의 카를 교를 꼽았다. 트레비 분수를 직접 본 적이 없어 그 풍경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카를 교에 대한 그의 생각에는 동의를 보탤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이곳에만 오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천진난만한 아이가 된다. 제정신을 잠시 집에 놓고 온 사람들처럼 애나 어른이나 평등하게 이성을 잃고 열심히들 논다.”

 

카를 교뿐이겠는가. 여행을 떠나 온 사람들에겐 특유의 ‘활기’가 느껴진다. ‘너도 여행을 온 거구나?’라며 서로를 알아보는 눈빛, 그리고 이어지는 미소의 화답. 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자신의 여행과 상대방의 여행을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그 짧은 순간. 그 교감과 공감이 뒤섞이는 찰나의 순간이 ‘나’를 풍요롭게 만들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을 낙원처럼 변화시킨다.

 

나에게 카를 교는 어떤 느낌으로 남아 있을까. 여행 첫날에는 매번 그 지역의 가장 유명한 곳(가령 도쿄에 가면 도쿄 타워에 올라가고, 파리에 가면 에펠탑에 올라가는 식이다)에서 ‘야경’을 즐기는 것을 기본 일정으로 짜기 때문에 이번에도 카를 교에서 느긋하게 밤 풍경을 즐기려고 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물건을 잃어버리는 등 우여곡절 끝에 허겁지겁 찾아야 했다.

 

분주하면서도 침체된 기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카를 교의 문턱에 도착했을 때, 그제서야 ‘여행의 시작’을 체감할 수 있었고, 눈앞에 펼쳐진 아늑한 야경이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했다. 아, 이 다리를 내가 걷고 있다니. 손에 잡힐 듯한, 말로만 듣던 프라하 성의 자태라니. ‘힐링’이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그 순간에 가장 걸맞은 표현을 찾다보면 결국 그 단어를 꺼내들 수밖에 없으리라.

 

- 성 루트가르트 -


- 예수 수난 십자가 -



“어, 안녕하세요?”

 

또 하나의 단어를 말하라면 ‘만남’일 것이다.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서 알게 됐던 사람들을 카를 교 입구(구시가 광장 쪽)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됐다. 여행지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 어떤 것인지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프라하 성에서 또 한번의 우연으로 만나게 됐던 그들 중 한 명과 그의 다른 일행을 만나기 위해 함께 걷기도 했다.

 

그날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유랑’이라는 카페가 있는데, 그곳에 글을 올려 여행 일정에 맞는 ‘동행’을 구해 함께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혼자 다니는 데 익숙해서 굳이 일행을 구할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혼자 여행을 떠난 여성의 경우에는 그런 식으로 동행을 찾는다고 한다. 아마 프라하에서 그런 동행을 구한다면, ‘카를 교에서 만나요“라고 할 만큼 그곳은 ‘만남’을 위한 장소였다. 또,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게 되기 가장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카를 교는 1402년(1406년이라 설명한 책도 있다) 완공됐다. 원래 있던 다리가 홍수(1342년)로 유실되자 카를 4세가 건축가인 페터 파를러에게 명을 내려 다리를 건축하게 했다고 한다. 1357년부터 1402년까지, 46년에 걸쳐 공사가 진행된 끝에 완성된 카를 교는 현존하는 석교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길이 520m, 폭 9.5m의 이 다리 덕분에 프라하는 유럽의 무역로에서 주요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에야 보행자 전용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수많은 마차들이 이 다리를 경쾌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누비고 다녔다고 한다. 양쪽 입구에 위치한 탑은 통행료를 징수할 목적으로 지어졌고, 다리 양쪽으로 15개씩 총 30개의 성인상(聖人像)이 세워져 있다. 다리의 곳곳에는 화가들과 거리의 악사들이 자리잡고 있고, 여행객들은 저마다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스스로를 비추고 있다. 


프라하 여행, 그 낭만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카를 교에서 얻은 '힐링'과 '만남'은 그 여운이 제법 길게 남아 있다. 아마도 그 곳이 카를 교이기 때문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양귀자는 『모순』에서 '언제나 최고의 셔터 찬스는 한 번뿐, 두 번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했다. 카를 교에 서 있던 그 순간, 나는 내게 주어진 한 번의 셔터 찬스에 과감히 셔터를 눌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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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