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이 세상에 나를 가둘 감옥은 없어", <프리즌>이 던진 메시지

너의길을가라 2017. 4. 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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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교도소가 범죄의 대가를 치르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범죄를 생산하는 곳이라면? 죄수가 교도관을 휘어잡고 있다면? 죄수들이 교도소 안팎을 넘나들 수 있다면?’ 모든 관습을 뒤틀어버리는 완전히 새로운 교도소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프리즌>의 출발은 기존의 상식과 고정관념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이었다. 밤만 되면 죄수들이 교도소 밖으로 나가 완전범죄를 저지른 후 복귀한다. 기업의 탈세 혐의를 밝힐 중요 증인을 감쪽같이 살해하고, 대규모의 마약 밀매 및 유통을 주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이 교도소에 갇힌 죄수들의 짓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완벽한 알리바이의 존재, 그리하여 교도소는 완전범죄의 온상이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감옥 안의 제왕, 절대권력을 손 안에 거머쥔 정익호(한석규)가 존재한다.


 


물론 ‘교도소=범죄의 대가를 치르는 곳’이라는 1차원적인 개념은 ‘교도(矯導)’라는 과정을 통해 사회복귀를 추구함으로써 재범률을 최저 수준으로 낮춘 노르웨이의 교도소 시스템(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음 침공은 어디?>를 참고)의 걸음마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진전을 위해 이 글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기로 하자. 어찌됐든 ‘우리에게’ 감옥이란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범죄를 단죄하는 공간이고, 그에 대한 이미지는 지극히 폐쇄적이고 제한적이라는 게 사실이니 말이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인 1995년, 당시 대한민국에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가. 부실 공사로 세워졌던 상품백화점이 무너지고(6월 29일), 노태우와 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이 차례로 구속(11월 16일과 12월 3일)됐다. 이처럼 초유의 사태들이 연달이 벌어지면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교도소라는 곳은 그 사회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했다”는 나현 감독의 말을 받아들이자면, 제법 적절한 시기를 잡아낸 셈이다. 그 영화가 2017년에 개봉을 하는 이 ‘공교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난 2016년 11월 13일 국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 씨의 구속을 시작으로, 2017년 1월 21일에는 ‘블랙리스트’ 작성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구속됐고, 2월 17일에는 433억원대 뇌물공여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다. 삼성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그래서 ‘삼성 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덧입혀진 상황에서 이 부회장의 구속은 놀라운 일이었고, 더불어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3월 3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기에 이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연스레 ‘교도소(혹은 구치소)’라는 공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수용자 번호 503번이 어떤 수감방에 머물게 되는지, 그 크기나 구조는 어떠한지, 그리고 식사의 질은 어느 정도인지 말이다.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궁금증들이 뒤섞여 있다. 이러한 물음들의 핵심에는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자들에 대한 교도행정이 다른 수감자들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분명 이들이 ’특혜‘를 받고 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함께 말이다.

 

물론 <프리즌>에서처럼 죄수가 교도소 전체를 장악하고, 심지어 교도소장(정웅인)마저 발아래에 두는 일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당연히 범죄를 설계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 다니는 것도 불가능하다. (영화 속에서 익호는 유건(김래원)에게 빚을 진 후, 이를 갚기 위해 함께 회를 먹으러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현실성을 따진다면 <검사외전>에서 변재욱(황정민)과 한치원(강동원)의 내외 합작이라면 또 모를까. 이쯤에서 지난 2005년의 판례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법호인 접견을 이용하여 변호인이 휴대전호와 증권거래용 단말기를 구치소 내로 몰래 반입하고 교도관에게 적발되지 않기 위해 휴대전화의 핸즈프리를 상의 호주머니 속에 숨긴 다음 수용자와 머리를 맞대고 변호인과 수용자가 상담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가방을 세워 두어 통화모습을 거리는 등의 방법으로 마치 형사사건에 관하여 상담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여 수용자로 하여금 외부와 통화하게 하고 물품을 수수하게 한 것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를 구성한다. 2005. 8. 25. 2005도 1731

 

이것이 일반적인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교도소’는 여전히 은폐된 공간이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투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무리 교도소가 격리된 공간이라 하더라도 그곳도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하나의 사회이고, 그렇다면 바깥세상의 ‘룰’이 적용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전반부의 <프리즌>이 관객들에게 상당한 설득력을 제공하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죄수들과 교도관들 사이에 ‘뇌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관계망이 형성될 여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나를 가둘 감옥은 없어“

 

익호의 처절한 외침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처참한 수놈 하이에나의 삶(한석규의 표현)’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동시에 저와 같은 생각을 실제로 하고 있을지 모를 ‘죄수’들과 그들에 대한 처우에 난처함을 겪고 있을 교정당국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한편, <채널A>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최순실 씨는 교도관에게 특정 수감자들을 ‘의무실로 데려오라’고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법무부 교정본부 관계자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고 대꾸할 가치가 없는 보도”라며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각종 특혜 의혹(편의를 위해 별도의 시설을 만들었다거나 서울구치소장이 3일 연속 면담을 가졌다는 등)도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교정당국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감자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며 강력히 부정한 바 있다. 계속된 의혹 제기에 교정당국은 당혹스럽겠지만 어찌하겠는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은 것을, 그리고 그러한 불신을 자초하고 증폭시킨 사람들이 현재 교도소에 수감된 저들인 것을.

 

또, ”언론과 국민의 관심 밖에 있던 법무부 교정 교도 제도와 사람들, 철저한 실태조사와 강도 높은 개혁이 있어야 할 어둡고 심각한 '그늘'“이라는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처럼, ‘단순히 어처구니없고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동안 ’그늘‘로 존재했던 교정당국이 경각심을 가지고 스스로를 개혁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과한 상상력을 발휘한 것처럼 보이는 <프리즌>이 지금 이 시점에 대한민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 아닐까. 


P.S.  손익분기점인 215만을 넘기고 250만 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프리즌>이 조금 더 힘을 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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