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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부진, 불필요한 타입슬립, 불편한 연기력 탓이다

너의길을가라 2017. 2. 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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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사임당> 15.6% → 16.3% → 13.0% → 12.3%

KBS2 <김과장> 7.8% → 7.2% → 12.8% → 13.8% 


이변(異變)이다. 설마했던 일이 정말 벌어졌다. 남궁민의 KBS2 <김과장>이 2017년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SBS <사임당, 빛의 일기>를 수목 드라마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같은 날 스타트를 끊은 두 드라마의 시청률 추이가 매우 흥미로운데, 마치 '희비쌍곡선'마냥 극명하게 대비된다. <사임당>은 돛이 꺾여 바다 한가운데에 멈춰선 느낌이고, <김과장>은 바람에 돛 단든 힘차게 나아가는 모양새다. 첫 회부터 엇갈린 '평가'와 '입소문'은 두 드라마의 운명을 갈라놓았다. <사임당>의 부진,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사임당>은 2017년 최고의 기대작이었다. '이영애'라는 이름값이 주는 무게, 기대감, 설렘이 그만큼 컸다. (송승헌에겐 미안하지만..) 15.6%에 달하는 첫 회 시청률(15.6%, 닐슨코리아 기준)은 그 기대치를 보여준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영 아니올시다' 였다. 마치 옛날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진부함이 드라마 곳곳에 묻어 있고, 이야기의 전개는 오로지 우연에 의존한 채 빈약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뿐인가. 어린 사임당 역을 맡은 박혜수는 연기력 논란으로 '몰입'을 방해하기까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사임당>은 '타임슬립'이라기보다는 현대 서지윤과 과거의 사임당이 엇갈린 '뫼비우스 띠' 같은 관계가 더 적당하다"


박은령 작가는 첫 방송을 앞두고 <사임당>이 기존의 '타입슬립' 드라마들과 차별점이 있다고 강조했지만, 장르 내에서의 세밀한 구분은 큰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어찌됐든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는 기본 설정은 같고, 이와 같은 소재의 드라마는 이제 더 이상 색다르지도 흥미롭지도 않아졌다. 그만큼 '타입슬립' 드라마가 범람했기 때문이다. 특히 tvN <나인>과 <시그널> 그리고 <도깨비>는 빠른 전개와 높은 완성도로 시청자들의 눈높이는 한껏 끌어올렸는데, 여기에 미치지 못하면 자연스레 식상한 드라마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사임당>의 경우에는 '타임슬립'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할 분명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 <나인>의 경우에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겠다는 굳은 의지, <시그널>에서는 놓쳐버린 범죄자를 반드시 잡아,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결의가 시청자들을 설득시켰다. <도깨비>는 운명을 초월한 사랑이 이유가 됐다. 하지만 <사임당>의 경우에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그리고 그 구조도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고 밋밋하기만 하다.


현재의 서지윤(이영애)은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사임당의 일기(비망록)를 발견하고, 그에 얽혀 있는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설득력'이 결여된 전개에 시청자들은 집중하기 어렵다. 현재와 과거의 잦은 교차 편집은 오히려 몰입도를 떨어뜨려 드라마를 두동강내버렸다. 차라리 어정쩡한 '퓨전 사극'이 아니라 무게감 있는 사극으로 밀어붙이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결국 중국 시장을 겨냥해, '타입슬립'을 무리하게 끌어들였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시간강사 서지윤와 지도 교수 민정학(최종환)의 갑을 관계도 작위적이고, 자신을 파멸시키려는 민정학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장면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또, 서지윤이 이탈리아의 저택에서 미인도를 발견하는 장면은 갑자기 유리가 깨지는 초자연적 현상에 의존해 실소를 자아낸다. 게다가 "이건 당신 거예요"라며 그림과 오래된 책을 몽땅 줘버리는 저택 주인이라니. 참으로 어설프기 짝이 없다.


또, 미인도 속의 비익조 인장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의기투합한 서지윤과 한상현(양세종)을 '불륜'으로 의심하는 시어머니 김정희(김해숙)의 태도도 이상할 뿐더러, 서지윤과 한상현의 반응도 의아하긴 마찬가지다. 애초부터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에 다름없다. 운평사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육의 '원인'으로 사임당이 그린 그림을 설정한 건 드라마를 극적으로 만들려는 장치였겠지만, 한편으로는 사임당을 민폐로 만드는 악수와도 다름 없었다.



사임당의 가슴 아픈 스토리에 시청자들이 안쓰러운 반응을 보이기보다 짜증을 내는 까닭은 사임당 역을 맡은 박혜수의 연기력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연기톤과 부족한 발성, 어색하고 딱딱한 표정 연기는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방해했다. 그러다보니 이야기의 큰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린 이겸(양세종)과의 풋풋한 러브 라인도 공감을 받지 못했다. 사극에서 '아역'의 중요성은 두 말 하면 잔소리 아니겠는가. 캐릭터의 성격과 배경, 성장 과정을 단단히 다지는 건 이야기의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다.


가령, MBC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이로운은 어린 홍길동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며 시청자들을 눈길을 사로잡았다. 깜찍한 외모에 다양한 감정들을 풍성하게 표현해 '연기 천재'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게다가 김상중이라는 대배우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으니 드라마가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고 있다. 반면, 이영애는 <역적>에서의 김상중의 역할을 전혀 해주지 못했고, 오히려 오랜만의 복귀 탓인지 다소 어색한 연기를 보여줬다. 조화되지 않는다는 인상이 강하다.



물론 박혜수의 연기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있다. <사임당>이 2015년에 제작된 드라마라는 점이다. 2년 전의 연기이다보니 설익은 측면이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변명을 감안해 배우의 연기력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2년 전에 방송됐어도 그 연기에 대한 평가는 그대로였을 테니 말이다. '아역 시절'이 담긴 4회까지 마무리 된 <사임당>은 이제 중대한 기로에 섰다. '기대작'에 머무를 것인가, '화제작'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의 갈림길에 섰다. 


앞으로 반등을 기대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 본격적으로 성인 배우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큰 기대가 되진 않는다. 이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구조가 노출된 데다가 이영애와 송승헌의 '조합'도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믿을 구석은, '한복을 입은 이영애'의 위력뿐이라는 이야기인데.. 과연 <사임당>의 반전은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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