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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스승이자 참된 리더, 김사부를 떠나 보내며

너의길을가라 2017. 1. 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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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승리했다. 그리고 진실은 위대했다. 낯간지럽지만, 한마디로 낭만적인 결말이었다. 부용주(한석규)는 도 원장(최진호)을 상대로 제대로 한방 먹였고, '의인()'이자 '의인(義人)'인 닥터 김사부에 감복(感服)한 '남대문의 스쿠르지 영감' 신 회장(주현)은 돌담병원 응급외상센터 설립 계획을 승인했다. 이로써 닥터 김사부의 오랜 꿈이 이뤄졌다. 그에게 배달된 웹툰의 수많은 빈 페이지는 응급외상센터에서 벌어질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정말이지 기대했던 결말이었고, 기대 이상의 결말이었다.



지난 17일 SBS <낭만닥터 김사부>가 종영했다. 마지막 회(20회) 시청률은 27.6%였고, 김혜수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번외편'은 27%를 기록했다. 비록 '꿈'의 시청률인 30%를 돌파하진 못했지만, 첫회를 9.5%로 출발했던 <낭만닥터 김사부>가 거둔 성과는 매우 뜻깊었다. 작정하고 만든다면, '에피소드' 몇 개를 더 집어넣는 선택도 불가능하진 않았다. 물론 그랬다면 상승세를 타던 시청률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가 늘어지는 부실 공사를 해야 했을 것이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연장의 유혹'을 이겨내고, 애초에 기획됐던 20회로 마무리 지은 건 대단한 용기였다. 그러나 '김사부'라는 존재로부터 위로를 받았던 시청자들의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 없었던 제작진은 '변외편'으로 화답했다. '김혜수'라는 배우의 합류는 한석규뿐만 아니라 다른 젊은 배우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자 추가 촬영의 '명분'이 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번외편'은 이야기의 완성도를 흐트러뜨리지 않고, 오히려 '발전'시키고 '매듭'지었는데, 이는 '좋은 엔딩'의 표본이라 일컬을 만 했다.



"뜻은 가상하다만, 너 하나 그런 뜻 갖는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아."

"넌 세상 바꿔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냐? 나 아닌데? 나는 사람 살려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는 거야.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그 순간 앞에선 내가 마지노선이니까. 내가 물러서면 그 사람 죽는 거고, 내가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노력하면 그 사람 사는 거고."

"미치겠구만. 그 나이에 아직까지 그런 비현실적인 꿈을 꾸고 있다니."

"그것을 전문용어로 '개멋' 부린다고 그러지. 좀더 고급진 말로는 '낭만'이라고 부르고."


닥터 김사부는 참된 '스승'이었다. 김사부가 자신을 찾아온 도 원장과 나누는 대화를 보면서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했다. '악'의 표상처럼 그려지긴 했지만, '높은 자리'에 어떻게든 올라가서 '권력'을 부둥켜 안고자 하는 도 원장의 모습은 기실 우리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강동주(유연석)도 그 길을 걷고자 그토록 애쓰지 않았던가. '너 하나 발버둥 친다고 세상이 바뀌진 않아'라는 도 원장의 냉소는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의 것이었고, 또한 '나'의 것이었다.


'세상이 우리를 그리 만들었다'고 변명하는 우리들을 보면서도 김사부는 언제나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성공과 출세의 유혹 앞에 흔들리는 강동주를 기다렸고, 과거의 상처로 방황했던 윤서정을 기다렸고, 자신의 길을 몰라 헤맸던 도인범을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다. 김사부는 다그치기보다 인내했고, 잔소리하기보다 스스로 훌륭한 지향점이 되어주었다. 그는 '꼰대'가 아니라 '어른'이 되어 주었고, 다음 세대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했다. 그는 '버팀목'이었다.



또한, 닥터 김사부는 참된 '리더'였다. 김사부가 자신의 '낭만론'을 펼치자 도 원장은 다시 딴지를 건다. "과연 그런 개소리에 동조할 의사가 몇 명이나 될까. 당장 몸만 고되고 돈도 안 되는 이런 병원에 남아 있을 의사가 과연 몇 놈이나 되겠냐고." 김사부는 그와 같은 '현실론'에 지지 않고 이렇게 대답한다. "난 그렇게 믿고 있어. 아직은 의사 사장님 되고 싶은 애들보다 의사 선생님 되고 싶은 애들이 훨씬 많다고 말이야." 도 원장과 김사부, 과연 누구의 말이 맞았을까.


모처럼 즐거운 회식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수간호사 오명심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한다. '불길한' 예감을 비껴가는 경우가 없다고 했던가? "36번 국도에서 버스가 굴렀다네요. 차량에 화재까지 나서 부상자가 10명 이상이랍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돌담병원 의료진들은 자신의 본분을 떠올리며 곧바로 병원으로 전원 복귀한다. 가운을 입으며 늠름한 발걸음을 옮기는 그들의 모습, 자신의 위치에서 환자를 받을 준비를 마친 그들의 모습에서 가슴 벅찬 감동이 전해진다. 


생각해보면, 참된 '리더'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김사부와 같은 '스승'을 찾기 힘든 시대다. 본받고 의지할 만한 '어른'을 상실했다. 물론 우리들이 각자 그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어지러운 정치권을 바라볼 때마다 그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저마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얼굴을 들이미는 모양새를 보고 있노라면 다시 한숨이 나온다. 우리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참 많아 봐왔다. 그리고 많이 경험했다. 과연 그들은 세상을 바꾸었던가? 아니, 그들이 제시했던 이상은 바람직했던가?


어쩌면 '정답'은 다른 데 있었는지도 모른다. "넌 세상 바꿔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냐? 나 아닌데? 나는 사람 살려보겠다고 이 짓거리 하는 거야." 그렇다. 김사부의 말처럼, 정말 중요한 가치는 엄청나게 큰 허황된 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 세상을 바꾼다는 허언이 아니라 그저 눈앞에 있는 '사람'에 집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그동안 우리는 '경력'과 '이름값'이 적혀 있는 명함에 수없이 속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커다란 '뻥'에 너무도 쉽게 혼미해졌다.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참된 리더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살아간다는 건 매일매일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것.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매일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현실과 마주하는 것. 매 순간 정답을 찾을 순 없지만, 그래도 김사부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마라. 그 질문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의 낭만도 끝이 나는 거다. 알겠냐?"


김사부의 마지막 가르침을 잊지 말자.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포기하지 말자. 그 물음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또 다시 세상의 논리에 휩쓸려 '낭만'을 잃고, '나'를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는 또 다시 '명함'과 '허언'에 흔들리고 휩쓸릴 것이다. 3달 간의 뜨거웠던 여정이 끝이 났다. 이제 참된 '스승'이자 '리더'였던 김사부를 떠나보내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마음 속에 깊이 새겨진 그의 '낭만'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잊지 말자, 낭만! 일지 말자, 김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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