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쉽지만 헷갈리는 <마스터>, 지루함을 넘어 천만으로 갈 수 있을까

너의길을가라 2016. 12. 26.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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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하고 터졌다. '주말 + 크리스마스'의 파괴력은 엄청났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300만 명을 넘어 버렸다. 개봉 첫 날 39만 2,866명을 동원하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던 <마스터>는 24일과 25일 이틀에 걸쳐 무려 182만 1,541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300만 고지를 거뜬히 넘었다. 누적 관객 수는 300만 2,269명.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특수를 제대로 누렸다. 별다른 경쟁작이 없는 상황이라 이런 추세라면 2017년 첫 1,000만 영화의 자리를 노려봄직하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꿈의 캐스팅에 엄지원, 오달수, 진경까지 특급 배우들이 참여한 <마스터>는 '진수성찬'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이 배우들을 데리고 못하면 내가 정말 못한 것"이라는 조의석 감독의 말처럼 '실패'를 예상하기 힘든 라인업이다. 관건은 '입소문'이다.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 '지루하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어 앞으로의 흥행 전선이 어떻게 형성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연말 + 연초'라는 또 하나의 특수가 기다리고 있어 <마스터> 입장에선 미소를 살짝 머금어도 될 것 같다.



1. <마스터>는 쉽다. 


"조희팔을 모티브로 한 것은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커서 그랬어요. 진현필을 필두로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의 부조리를 모두 진현필에 담아보려고 그랬죠."


조의석 감독은 <마스터>가 유사 이래 최대 규모의 사기 사건인 '조희팔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다. 조희팔이 누구인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0여 개의 피라미드(다단계) 업체를 통해 투자자 약 3만여 명으로부터 무려 4조 원을 가로 챈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낭만적이라 죄송하다)이다. 사기 행각이 들통나고, 검찰이 기소를 하기 직전 조희팔은 중국으로 밀항에 성공한다. 신분을 숨긴 채 중국에서 숨어 살아가던 조희팔을 수사하던 경찰은 2012년 5월 난데없이 조희팔이 사망했다고 발표한다. 


"조 씨가 지난해(2011년) 12월 중국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으며, 같은 달 국내로 유골이 화장되어 이송된 사실을 확인하였다."


정말 조희팔은 사망했는가? 경찰이 '조희팔은 죽었다'며 제시한 증거는 응급진료기록부, 사망진단서, 화장증명서, 장례식 동영상 등이었다. 하지만 사망진단서에 공안의 직인이 없었고, 화장증명서에는 조희팔이 사망한 날의 일주일 전 날짜 도장이 찍혀 있는 등 의심스러운 부분이 너무 많았다. 결정적으로 조희팔의 유골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조사를 의뢰했지만, '감식 불가'라는 결론이 나오면서 조희팔의 위장 죽음에 대한 의혹은 커져만 갔다. 결국 경찰은 "사망했다고 판단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물러서야만 했다. 



조의석 감독이 '조희팔 사건'을 끄집어낸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매력적인 소재'였기 때문이다. '사이즈'가 대충 나오지 않는가. 이건 1,000만 영화의 '사이즈'다.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카드'까지 손에 거머쥔 조 감독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부터 기조는 이랬을 것이다. '쉽게 가자, 쉽게' 그래서 <마스터>의 구도는 명확하다. 사기꾼 진현필이라는 '악'이 있고, 그를 잡아들이려는 경찰 김재명(강동원)이라는 '선'이 맞선다. 그 사이를 줄타기하며 오가는 박장군(김우빈)은 '정의'라는 이름에 감복해 '새사람'이 된다.


'오락 영화'이자 '1000만 영화'라는 쉬운 길을 선택한 <마스터>는 '조희팔 사건'이 담고 있는 문제(천민자본주의나 정경유착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지적으로 뛰어난 인간들, 그것이 사기꾼이든 경찰(영화 속에서 김재명은 진현필을 속일 만큼 명석한 두뇌를 자랑한다)이든 간에, 그들 간의 '전쟁'으로 몰아간다. 여기에 조희팔에게 돈을 갖다 바친 사람들, 그 평범한 이들은 '욕망'의 노예가 된 '바보'에 불과하다. 똑똑한 사람들은 그 바보들을 등쳐먹고, 어쩌면 그들을 대신해서 '정의'를 외친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2. <마스터>는 헷갈린다.


<마스터>의 런닝타임은 143분이다. 제법 길다.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구동성으로 '런닝타임이 너무 길다'고 말한다. 사실 영화가 길다는 건 그 자체로 흠이 아니다. <곡성>만 156분이나 되고, <타이타닉>은 195분이다. 문제는 여기에 한마디가 덧붙여진다는 것이다. 바로 '지루하다'는 혹평이다. 이건 치명적이다. 그것도 범죄, 액션 영화가 지루하다니! '조희팔 사건'이라는 영화적으로 가장 구미가 당기는 소재에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이라는 '재료'까지 갖춘 <마스터>가 지루한 까닭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병헌, 강동원, 김우빈은 분명 <마스터>의 삼각축이다. 영화는 초반의 긴 시간을 인위적으로 배분해 세 인물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그건 '설명'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보여주기'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단조로운 캐릭터가 입체감마저 잃어버렸다. '정의'를 부르짖은 김재명은 지나치게 평면적이라 매력적이지 않다. 강동원의 비주얼이 빛을 발하지만, 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눈길은 절대 악이라고 할 수 있는 진현필에게로 자꾸만 쏠린다. 


<베테랑>에서 유아인을 통해 증명된 것처럼, 악역이 살아야 영화 전체가 살기 마련이다. 이병헌은 발군의 연기를 통해 진현필을 묘사한다. 하나의 감정만을 얼굴에 드러내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이병헌쯤 되는 배우는 다양한 감정들을 얼굴에 녹여낸다. 그의 연기를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다. 문제는 <마스터>가 원하는 건, '조희팔=사기꾼'이라는 공식일 뿐 관객들이 그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을 차단한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이병헌의 연기는 뭔가 '소비'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병헌의 진현필은 지나치게 매력적이고, 영화는 관객들이 진현필에 감정이입을 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그는 사기꾼 조희팔의 모방이 아닌가. 그는 나쁜 놈이고,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관객들이 기댈 곳은 박장군뿐이다. 생존을 위해 진현필과 김재명 양쪽을 '박쥐'처럼 오가는 박장군은 그나마 가장 '친근한' 캐릭터다. 김우빈은 다양한 표정과 과장된 제스처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물하지만, 판에 박힌 스토리 라인과 결말을 구제하기엔 역부족이다. 


관객들의 헷갈림은 바로 애매한 삼각축이 만들어 낸 부조화에서 비롯되고, 관객들이 느끼는 지루함 역시 여기에 책임이 있다. 밋밋한 인물 소개 따위는 과감히 잘라버리고, 차라리 후반부에 펼쳐지는 진현필과 김재명의 진검승부에 좀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삼각축에 대한 인위적 배분을 포기하고, 하나의 축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나갔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지루하다'는 평은 듣지 않게 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스터>는 한국영화의 기술적인 완성도가 어디까지 도달했는지, 그 수준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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