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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낭만닥터 김사부>에 열광하는가

너의길을가라 2016. 12. 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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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인기 말이다. 23.8%(닐슨코리아 기준), 또 한번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했다. 12일 방송된 11회 21.6%보다 상승했고, 6일 10회에서 기록했던 22.8%를 넘어섰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방송되기 전만 해도 '우려'가 있었다. 의학 드라마에 대한 피로감. SBS <닥터스>가 종영(8월 23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또 의학 드라마야?'라는 의아함이 있었다. 그러나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와 같은 염려를 '기우'로 만들어 버렸다.



궁금하다. <낭만닥터 김사부>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대중들은 이 드라마로부터 무엇을 발견한 '우화(寓話)'에 가까운 설정들은 단순하고 심지어 유치하다 여겨질 때도 있다. 거대병원과 돌담병원의 대비(거대병원은 거성대학병원의 줄임인데, 이름에서부터 두 병원의 성격은 극명히 갈린다), 선악의 극명한 대치가 그렇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과격(?)한 전개는 사실상 판타지에 가깝다.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병원의 응급실에 그토록 많은 환자들이 들이닥치다니. 


드라마의 전면에서 활약하는 서현진과 유연석의 연기도 훌륭하고, '존재'만으로도 드라마의 품격을 높이는 한석규의 '힘'은 측정 불가다. 돌담병원의 수간호사 오명심(진경)을 비롯해 돌담병원의 구성원들은 하나같이 제몫을 해낸다. 자신의 아내와 딸을 강간한 강간범의 수술을 중지시키기 위해 응급실에 난입한 조폭을 연기한 이철민은 그 잠깐 사이에 시청자들의 눈물을 쏙 빼는 몰입도 높은 연기를 펼친다. "주연뿐만 아니라 간호사, 조폭 등 모든 연기자들이 <낭만닥터 김사부>를 고퀄리티로 만들어 준다."는 제작진의 말은 허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어렵다. 역시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단순히 '재미있는' 드라마'와 '좋은' 드라마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혹은 드라마 작가가 갖춰야 할 덕목이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시대의 흐름을 포착하는 '감각'이 아닐까. 조금 더 들어가 본다면, 시대의 '고민'을 짚어내고, 그 고민을 이야기로 구성해 대중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는 능력의 유무라는 생각이 든다. <낭만닥터 김사부>는 그 어려운 일을 뚝딱뚝딱 해내고 있다. 극본을 쓴 강은경 작가가 얼마나 칼을 갈았는지 우리 사회의 '환부'를 시원스레 도려낸다.



"차별의 시대. 실력보다는 연줄과 배경이 지배하는 시대. 생명에 대한 도전과 극복의 미덕이 있어야 할 병원에서조차 여전히 21세기 판 성골, 진골이 존재했다"


"돈의 시대. 돈질이 곧 갑질이 되는 그런 시대. 세상은 돈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으니"


"출세 만능의 시대. 출세를 위해서라면 양심도 생명도 이해타산에 밀려버리는 시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타인의 희생조차 정당화해버리는 사람들. 힘이 없다는 이유로 힘 있는 자들에게 찍히고 싶지 않아서 반쯤 눈감은 채 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 그러한 이들의 비겁한 결속력이 기득권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군림하고 있었으니"


<낭만닥터 김사부>는 매회마다 유연석의 내래이션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병폐'를 드러낸다. '차별의 시대', '돈의 시대', '출세 만능의 시대' 등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민낯을 '의학 드라마'라는 형식 속에 접목시키면서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그리하여 <낭만닥터 김사부>는 '사회 고발극'이라 이름 붙여도 무방할 만큼 적나라하다. 또, 기성세대이면서도 결코 부패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은 인물 김사부(한석규)는 청년세대에게는 '멘토'가 되고, 대척점에 서 있는 기성세대에게는 대신해서 사이다 같은 강펀치를 날린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낭만닥터 김사부>는 강동주(유연석)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흙수저'로 태어나 '돈의 시대'를 몸소 경험했던 그는 '출세 만능의 시대'에 무릎을 꿇고 만다. '차별의 시대'에 저항하기보다 순응하는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자신의 아버지가 외면받았던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환자를 외면한다. '돌담병원'으로 좌천된 그는 김사부를 만나게 되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오염된 사고방식들을 조금씩 벗어던진다. 물론 그 과정에서 김사부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한판 대차게 붙기도 한다.


두 사람이 반목했던 초반의 장면들은 마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갈등을 보여주는듯 했지만, 김사부와 강동주가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또, 유연석이 의사로서의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고, 인간으로서의 성장을 보여주면서 현실 세계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도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음을 느끼게 한다. 특히 두 사람이 술판을 벌이면서(12회) "넌 양심이 아픈게 아니라 네 욕심이 아픈 거야."라는 직격탄을 날리며 강동주가 그를 사로잡고 있던 욕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이끄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주혁이는 살해당한 겁니다. 매일 같이 상급자 세 명이서 얼차려 시키고 때리고. 그래서 복귀도 안 한 겁니다. 그래서 주혁이가 죽은 거라고요. 수술한 주치의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구타당해서 주혁이가 그렇게 된 거라고. 그쪽한테 얘기하는 걸 내가 똑똑히 다 들었다고요" (드라마 속 박주혁 일병의 친구 황찬성)


"그러니까 거짓말로 사망진단서를, 그것도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사망진단서에 사인을 하라는 겁니까. 죄송하지만 이자리 못보고 못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강동주)


'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이른바 '직업 윤리'를 강조하는 장면들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기존의 모든 의학 드라마들이 해왔던 내용의 답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직업 윤리'를 이야기하면서 '군대 내 폭력'이라든지 '사망진단서 허위 작성' 등의 문제들을 끄집어 낸다는 건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목이다. 지난 2014년 4월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은 어느새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지만, 여전히 군대 내 폭력은 현존하는 문제이다. 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일이다.


그런데 <낭만닥터 김사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한걸음 더 나아가 '사망진단서 허위 작성'까지 끄집어 낸다. 직접적으로 의도했는지 혹은 우연찮게 겹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병사'냐 '외인사'냐를 두고 고민하는 강동주의 모습에서 우리는 '故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망의 원인을 '병사'로 기입하라는 도 원장의 외압과 회유로 고심하던 강동주에게 "사망진단서는 외압 때문에 팩트가 바뀌면 안 된다"는 윤서정(서현진)의 한마디는 브라운관을 뚫고 나와 '현실'로 직사포처럼 꽂혔다.



여전히 故 백남기 씨 죽음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의 죽음은 '병사'로 남아 있다. 서울대학교 측은 "주치의였던 백선하 교수가 내린 의학적인 판단을 존중한다"며 사망 원인을 수정할 의사가 없다고 발표했다. 혹시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강동주가 받았던 '외압'이 故 백남기 씨 죽음에도 있었던 건 아닐까. '물대포'라는 유발 요인이 존재했고, 누가 봐도 당연히 '외인사'가 분명했던 백남기 씨의 죽음을 '병사'라 적어넣었던 백선하 교수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잊지 말자, 다짐하는 듯한 <낭만닥터 김사부>의 '고민'이 반갑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넘어 '좋은' 드라마의 '개념'을 탑재한 <낭만닥터 김사부>에 시청자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다. 강동주의 성장이 곧 우리의 성장이 되기를, 그리하여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사회가 '차별의 시대', '돈의 시대', '출세 만능의 시대'를 넘어 '정의의 시대'로 담대히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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