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촛불'은 승리했다. 위대한 승리였다. 역사는 그리 기록될 것이다. 불참 1, 찬성 234, 반대 56, 무효 7. 오묘한 숫자의 배열은 '우주의 기운'을 실감케 했고, '하나'의 촛불에서 시작된 '탄핵'이 결국 행운의 숫자 '럭키 세븐'로 마무리 됐다는 번뜩이는 해석도 나왔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탄핵이 가결됐음을 선포하자 숨죽여 TV를 지켜보던 수많은 사람들은 같은 마음으로 환호성을 질렀고, 그날 밤 청와대 앞에선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폭죽이 터졌다.


'탄핵 정국'에서 시민들과 함께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一員)으로서 '촛불'을 들고, 누구 하나 지치지 않도록 서로를 응원 · 독려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했던 연예인들도 '소감'을 한마디씩 보탰다. 자신이 운영하는 연예 기획사(드림 팩토리) 건물에 '박근혜는 하야하라' 등의 현수막을 거는 등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섰던 이승환은 자신의 노래 '끝'의 가사를 인용해 "모든 새로움의 시작은 다른 것의 끝에서 생기죠"라는 글을 게시했다. 



고경표 "식지 않는 온도로 오래오래 이어지길"

김의성 "기쁘다. 갈 길이 멀다. 새누리, 삼성, 검찰, 언론"

김형석 "아아... 눈물이"

김효진 " 이겼다 위대한 승리"

류준열 "빨간 불의 의미는 곧 파란 불이 켜진다는 것. 그리고 마침내 켜졌다는 것"

솔비 "오늘은 정의를 위해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때"

이준 "오. 234, 56. 울컥. 헌법재판소 잘해라... 제발"

혜박 "내리는 첫눈만큼이나 기다렸던 오늘. 드디어 촛불이 승리했다"

황찬성 "훗날 오늘이 부끄럽지 않은 역사가 되길"


승리의 기쁨은 잠시동안 누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애석하게도 그 승리는 '폐허' 속에서 피어난 것이고, 그래서 분배할 '전리품'도 없다.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말처럼 "우리의 마음은 무겁다" 압도적 승리를 거뒀지만, 그 결과가 "자괴감을 치유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길고 긴 겨울은 이제 시작됐고 또 다시 봄이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다. 인양 해야 할 모든 진실들, 바로 잡아야 할 모든 비정상들. 아직 뒷 일이 너무 많이 남아있"는 그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우리에겐 아직 너무도 많은 '뒷일'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렇다. '탄핵'은 고작 '첫걸음'일 뿐이다. 당장만 해도 헌법재판소의 인용 결정이 남았고, '피의자 박근혜'에 대한 특검도 예정돼 있다. 자신의 SNS에 장문의 글을 올린 허지웅은 "탄핵보다 훨씬 더 중요한, 특검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시민의 지지와 열의가 명확해야만 특검이 바로 설 수 있"다며 앞으로도 광장 집회에 빠지지 않을 생각이라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반드시 이들을 엄정하게 처벌해야만"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만 이 '작은 승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런데 허지웅이 지칭한 '이들'이란 과연 누구일까? 



당연히 '국정 농단'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최순실과 그의 혈연들은 말할 것도 없다. 또, '문고리 3인방'으로 유명한 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도 빼놓을 수 없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을 추적해 처벌하는 것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서 끝일까? 당연히 아니다.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서 '공주 놀이'에 여념이 없었던 피의자 박근혜의 '범죄'를 밝혀내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또, 모든 역사적 퇴행을 이끌었던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책임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이만하면 됐다 싶을지 모르겠다. '착각'이다. 그것도 엄청난 착각. 묻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와 '최순실'이라는 '거품'만 걷어내면 우리의 자괴감은 치유되는 걸까. 그러기만 하면 길고 긴 겨울이 끝나는 걸까. '모든 진실'은 인양되고, '모든 비정상'은 사라지는 걸까. 안타깝지만 그리 녹록치가 않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지금의 이 '농단'은 3년짜리가 아니라 모습을 바꾸며 수십년을 이어온 '괴물'이다. "초법적인 재벌은 항시적 몸통이고 최순실은 지나가다 걸리는 파리"라는 주진형 한화투자증권 전 대표의 말은 핵심을 찌른다.



정말이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은 '정경유착'이고, 여기에 들러붙어 있던 검찰과 언론 등의 부패와 오염이었는지 모른다. 따라서 이 실체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박근혜들'과 '최순실들'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애써 이 위대한 승리인, '탄핵'을 고작 '첫걸음'에 지나지 않는다 말한 건 그 때문이다. 허지웅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지만, '이들'에 대해 좀더 이야기해보자. 우리는 '촛불'과 '탄핵 열차'에 대한 '무임승차'를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오해가 없길 바란다. 흔히 말하는 '국정논단에 편승하는 뮤지션'이라는 '비아냥'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누군가의 '뒤늦은' 참여를 나무랄 의사도 없다. '몰라서' 가만히 있었든, '두려워서' 가만히 있었든 간에 그 '뒤늦음'을 손가락질 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함께 한다'는 사실 자체이지, 과정이라든지 순서라든지 혹은 목소리의 크기는 하등 문제되지 않는다. 설령 그가 얄팍한 상업성을 의도했더라도 그 정도는 넉넉히 받아줄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같은 '시민'이기 때문이다.


진짜 '무임승차'는 끝내 광장에 나와 노래를 부르겠다는 가수들에게 붙일 이름이 아니다. '내가 왜 저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는지 모르겠다'며 울화통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가져가야 할 이름이 아니다. (물론 '이제와서?'라는 물음이 목구멍까지 나오긴 하지만..) '저들'을 위해 부역하고, '저들'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렸으면서 이제와서, 자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마냥 순결한 얼굴을 하고 '저들'을 씹어대기 바쁜 사람들을 부를 때 우리는 '무임승차'라는 단어를 꺼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을 용서할 수 없다"며 온갖 상스런 말을 쏟아내 '환호'를 받았던 전여옥 전 의원은 한때 '반박(反朴)은 뺑덕어미'라며 박근혜 의원을 비호했던 전력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비박계를 이끌며 탄핵 정국에서 유의미한 역할을 수행했던 김무성 전 대표는 다시금 정치적 영향력을 복원했지만, 우리는 그가 박근혜의 좌장으로 활약했던 과거를 잊어서는 안된다. 또, 그가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의 탄생에 공헌했던 '부역자'라는 사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또, 이런 자는 어떠한가. 한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매진하며 온갖 방송과 강연 등에 얼굴을 내비쳤던 고성국 박사는 JTBC에 패널로 등장해 태연히 탄핵 정국을 이야기하고, 촛불 민심을 언급한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정치평론가인양 행동한다. 물론 지금 언급했던 자들(외의 누구라도)의 '변신'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최소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 '과거 나는 이러이러 했다. 이 부분을 철저히 반성한다. 용서해달라.'는 자성과 자숙이 우선 아닐까? 


'상대 편'의 분열과 배신을 바라보는 건 꽤나 재미있는 구경거리이지만, 그 조악한 재미 때문에 그들의 설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그건 '작은 승리'를 거두고 '큰 패배'를 당하는 꼴이다. 우리는 '무임승차'를 (구분해서) 엄단해야 한다. 기실 '참여'에는 무임승차가 있을 수 없지만, '변신'에는 무임승차가 존재한다. 저들의 변장에 속지 말자. 우리가 내딛은 첫걸음이 위대한 족적의 시작이길 바란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제대로 된 '끝'에서 비롯된다는 걸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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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