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여행기

[버락킴의 파리 여행기] 4. 몽마르트르, 낭만과 사랑이 숨쉬는 그곳

너의길을가라 2016. 12. 7. 18:19
반응형



"뭐야, 왜 계단이 끝이 없어?"


'거리'가 돋보이는 몽마트르트(Montmartre) 지역을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고, 그 첫걸음은 '아베쎄(Abbesses) 역'에서 시작된다. 아베쎄 역은 깊이가 무려 30m나 되는데, 파리의 지하철 역 가운데 가장 깊다. 계단을 따라 그림과 사진 등이 장식돼 있으므로 구경을 하며 천천히 올라가는 것도 좋은 '운동(?)'이 될 것이다. 사실 끝이 쉽사리 보이지 않기 때문에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당신의 숨을 헐떡이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걸 기억하자. 그럴 바엔 파리에서 가장 큰 엘리베이터(총 정원 100명)를 타고 지상으로 이동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아르누보(Are nouveau, '새로운 예술'이라는 뜻) 양식의 지하철 역 입구를 중심으로 아베쎄 광장이 펼쳐지는데, 잠시 그 낭만적인 풍경들을 구경하기로 하자. 자, 이제부터 동선을 정해야 한다. 약 1시간 30분짜리 도보 코스를 소화하기 위해, 그리고 골목골목 명소들이 숨겨져 있는 몽마르트르 지역을 알뜰하게 둘러보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쎄 광장을 기준으로 왼편에는 '물랑루즈(Moulin Rouge)'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사크레쾨르 성당이 있다. 고민을 하다가 물랑루즈부터 둘러보고 크게 한바퀴를 돌아 사크레쾨르 성당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몽마르트르의 아름다운 거리를 걷다보면 과일과 해산물을 팔고 있는 자그마한 가게들이 눈에 띤다. '대형 마트라'는 압도적인 자본의 지배를 '편의성'이라는 합리화를 통해 수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선 재래 시장이 아니면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추억의 풍경이다. 다양한 색감의 상품들이 질서있게 정돈된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청량감과 생기가 옮겨왔다. 흔쾌히 사진을 찍으라는 해산물 상점의 사장님과 "봉주르"라는 인사와 함께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여행의 시작, 하루의 시작이 상쾌하기 그지 없다.



"와..." 


르픽 거리(Rue Lepic)를 따라 걷다보면 블랑슈 역(Blanche) 역이 위치한 클리스 대로(Boulevard de Clichy)가 나온다.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바로 그 유명한 '물랑루즈'가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고,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붉은 풍차'라는 뜻의 물랑루즈는 파리 세계박람회(1889년) 당시 댄스 홀로 사용됐다. 불행히도 1914년 화재가 발생해 전소됐는데, 1918년 개축을 했다.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로 더욱 널리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화려한 명성과 이름을 얻은 물랑루즈지만, 원래 이 곳은 마약과 매춘이 공공연하게 행해졌던 의외로 음습한 과거를 갖고 있다. 또, '프렌치 캉캉(French Cancan)'으로 얻었던 처음의 명성은 점차 사라지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져 1902년 12월 29일에는 영화관으로 전환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했고, 현재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장으로 우뚝섰다.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화려한 쇼를 감상하기 위해 꼭 찾는 명소가 된 것이다.



애초에 물랑루즈에서 공연을 즐길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현재 몽마르트르 지역에는 두 개의 풍차만이 남아있는데, 라데(Radet) 풍차와 갈레트(Moulin de la Galette) 풍차(원래 이름은 블뤼트팡 풍차)가 바로 그것이다. 밀을 갈거나 포도의 즙을 짜는 데 이용하기 위해 17세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던 '재분용 풍차'들은 총 30대 이상 설치됐었지만, 1870년부터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굳이 두 개의 풍차를 차례차례 보고 싶었던 까닭은, 돌이켜보니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잔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뜬금없는 타이밍의 고백이지만, 파리는 아름답다. 여기에서 '파리'는 '도시(都市)'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고, 파리의 '거리'를 말하기도 한다. 유승호는 『작은 파리에서 일주일을』에서 "도시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거리의 분위기다. 거리는 텍스트라기보다는 컨텍스트이며,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선을 연속적으로 포괄하는 파노라마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몽마르트르 지역을 걸으면서 그의 말을 분명히, 그리고 절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달리 미술관'을 찾아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시끌벅쩍한 '생명력'이 쏟아졌다. 살아남은 풍차 2대가 주는 어딘가 씁쓸한 애잔함을 깨끗이 씻어주는 쾌활함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밀려 사라지는 것이 있다면, 그래, 새로운 시간의 흐름 위에 올라 밀려오는 것도 있는 법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들이 더 큰소리로 떠들고, 더 마음껏 뛰어놀길 바랐다. 그 바람이 파리의 세찬 가을바람을 타고 대한민국까지 전해지길 희망했다.



구석에 숨어 있어 찾기가 쉽지 않지 않은 달리 미술관(Espace Montmartre Salvador Dali)에 잠시 들린 후, '재빠른 토끼'라는 뜻의 '오 라팽 아질(Au Lapin Agile)'을 찾았다. 몽마르트르의 카바레 쯤으로 이해하면 될 법한 곳이다. 이름 없는 화가였던 시절의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등이 밤마다 들렀다고 하는데, 오픈 시간이 21시부터라 내부를 구경할 순 없었다. 다음에 파리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몽마르트르 지역은 늦은 오후부터 밤까지 머물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여행에선 '밤'에 가야할 곳이 워낙 많아서 그러지 못했지만.



"예수 성심으로 로마와 프랑스를 구하자."


몽마르트르가 파리에서 가장 높은 지역이고, 사크레쾨르 성당(Basilique du Sacre-Coeur)이 그 몽마르트르 위에 우뚝 세워졌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크레쾨르 성당은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당이 됐다. 사크레쾨르 성당은 1870년 발발한 보불 전쟁(프랑스와 프로이센의 전쟁)의 패배로 인한 침체를 이겨내기 위해 지어지기 시작해 1914년에 완공됐다.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성당을 본뜬 로마 비잔틴 양식이다. 내부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리스도의 대형 모자이크가 있다. 크기가 무려 475㎡에 달한다. 


사크레쾨르 성당의 내부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파리 시내의 전경은 셔터를 누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만큼 장관이다. 날씨가 흐린 것이 약간 아쉬웠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다가 셀카봉을 꺼내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폼을 잡아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평소 피사체가 되는 걸 마뜩지 않아하는 편인지라 셀카를 찍지 않는 편인데, 이곳에선 그 마뜩잖음이 정체를 감춰버리더라. 여긴 파리이고, 몽마르트르가 아닌가. 그렇게 한참을 파리 시내와 함께 나 자신을 담아내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쯤하면 몽마르트르 지역은 제법 샅샅이 훑은 셈이다. 이밖에서 생 뱅상 묘지(Cimetiere St. Vincent)와 몽마르트르 박물관(Musee de Montmartre), 반 고흐의 집(Espace Maison de Vincent Gogh)도 들러볼 만한 장소다. 물론 다 들러보았지만(정말 열심히 걸었다), 이 글에선 이 정도로 언급만 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자, 이제 몽마르트르 '도보' 여행을 마무리 할 시점이다. 사크레쾨르 성당에서 아래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어 세탁선(Le Bateau-Lavoir)과 사랑해 벽(le mur des je t'aime)만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떠나기로 하자.




프랑스의 시인이자 비평가인 막스 자코브(Max jacob)가 센 강변에 빨래를 하기 위해 떠다니는 배와 집 모양이 닮았다는 이유로 '세탁선'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곳은 입체파 그림이 처음으로 그려졌던 아틀리에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바로 이곳, 세탁선에서 그렸다고 한다. 파리 시내의 집값은 상당히 비싼 편인데, 가난한 예술가들은 당연히 그곳에 집을 구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몽마르트르 지역은 그런 예술가들에게 최적의 장소였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총 511개의 조각으로 이뤄진 40㎡ 크기의 '사랑해 벽'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빈다. 이 벽에는 300개의 언어와 사투리로 '사랑해'라는 단어가 쓰여 있는데, 연인들(이 가장 많은 건 사실이다. 어쩌면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꼭 남기는 핫 플레이스다. 당연히 모국어로 쓰여진 글씨를 찾게 마련인데, 한국어는 세 군데에 '사랑해', '나 너 사랑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사랑한다'는 말이 주는 따스함이 온기로 다가와 차가워진 몸을 녹인다. 


몽마르트르는 이처럼 '사랑'으로 사람들을 충만케 하는 아름답고도 낭만적인 거리였다. 자, 이제 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을 해야 할 시간이다. 몽마르트르가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어 기피한다는 사람들도 제법 있는 편인데, 과연 몽마르트르를 빼고 파리를 논할 수 있을까. 어떤 여행 책자에는 사크레쾨르 성당 아래 광장에서 흑인들이 지나가는 관광객들의 팔에 팔찌를 채우고 돈을 받는다고 쓰여져 있는데, 실제로 물건을 '적극적으로' 판매한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