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스플릿>의 속시원해지는 스트라이크,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너의길을가라 2016. 11. 10. 13:54
반응형



유지태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 <스플릿>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답답한 때 시원한 스트라이크가 될 수 있는 영화" 정말 그렇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굳은 확신을 의심케 할 만한 일들이 나라 안팎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돌이키는 건 불가능하다 여겼던 최소한의 '근대성(近代性)'조차 무너지고 있는 시절이 아닌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허약함이 또 한번의 발작(發作)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이를 목도하는 우리들의 시선은 어느새 '불안'으로 그득하다. 


퍽퍽한 현실, 어느 때보다 '스트라이크' 같은 시원함이 필요한 시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링'을 소재로 한 겜블(도박) 영화인 <스플릿>은 이런 현실에 '단비'와도 같은 존재다. 거침없이 굴러간 공이 세워진 핀을 몽땅 날려버리는, 시원히 꽂히는 스트라이크를 보고 있노라면 막혔던 속이 뻥 뚫리듯 마음이 후련해진다. 물론 다시 꿉꿉한 현실로 돌아와야 하지만, 잠깐의 외도(外道)는 괜찮지 않을까? "뉴스가 제일 재밌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뉴스에 관객을 뺏기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최국희 감독의 걱정이 안쓰럽게 들린다.



"볼링이 왜 사람을 미치게 하는 줄 알아? 다음에는 꼭 스트라이크를 칠 것 같거든"


<스플릿>은 제작비 30억에 총 50억 정도가 들어간 중예산 영화다. 사이즈가 크진 않지만, 내용이 제법 알차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스플릿>은 스포츠와 도박을 버무린 오락 영화다. 그 안에 '권선징악'과 '휴머니즘'을 잘 녹여냈다. 어찌보면 뻔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볼링'이라는 낯선 소재가 그 익숙함을 상당히 지워낸다. 다양한 모습의 볼링장과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호쾌하고 리얼한 사운드는 자존심을 건 승부의 긴장감과 짜릿함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하다.


철종(유지태)은 볼링계의 전설이라 불리던 국가대표 출신의 볼링 선수였다. 교통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철종은 도박 볼링판을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그의 파트너인 도박 볼링 브로커 희진(이정현)은 볼링 코치였던 아버지로부터 볼링장을 물러받아 운영하다 빚을 지는 바람에 두꺼비(정성화)에게 볼링장을 통째로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지적 장애가 있는 볼링 천재 영훈(이다윗)을 만나게 되면서 반전(反轉)의 계기가 마련된다.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운 폼으로 투구를 하는 영훈이지만, 실력만큼은 그 누구보다 뛰어나다. 철종은 백발백중 스트라이크를 성공시키는 영훈을 도박 볼링판으로 이끈다. 물론 악의적인 접근이다. '재능'을 '돈'으로 환산하는 '어른'들의 욕망이 불편하고, 지적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과 비뚤어진 시선이 끊임없이 노출된다. 결국 '휴머니즘'으로 귀결되지만, <스플릿>은 영훈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트레이드 마크이다시피 한 '슈트'를 벗어던지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온 유지태는 거칠면서도 따뜻한 철종 역을 잘 소화했다. tvN <굿와이프>에서 보여줬던 악랄한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연기의 결을 보여줌에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만큼 캐릭터에 대한 분석이 뛰어나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독특한 연기로 청룡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던 이정현도 과하지 않은 담백한 연기를 펼쳤다. 철종에 대한 열등감 혹은 '살리에르 증후군'으로 설명할 수 있는 악역 두꺼비를 입체적으로 살려낸 정성화의 연기도 탁월했다.



무엇보다 돋보였던 건 자폐 증상이 있는 볼링 천재 영훈 역할을 완벽히 소화한 이다윗의 연기였다. 대중에겐 낯선 이름일 수 있지만, 그는 9살이었던 2003년 KBS1 <무인시대>로 데뷔한 14년 차 배우다. <시>, <고지전>, <더 테러 라이브> 등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스프릿>에서 '영훈'은 이야기 전개의 핵심적인 키이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갈등의 재료나 웃음의 소재로 소비되기 쉬운 캐릭터였다. 하지만 눈빛, 말투, 습관, 틱 등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살려낸 이다윗의 진솔한 연기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이른다.


영화의 제목인 '스플릿(split)'은 볼링에서 첫 번째 투구에 쓰러지지 않은 핀이 간격을 두고 남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스페어 처리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큰 실수를 뜻한다. 이는 곧 주인공들이 처해 있는 상황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현실에서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도 곧 '스플릿'처럼 난해한 국면이 아닐까. 풀어내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대답을 찾아낼까. 영화 속에서는 스플릿 상황이 깔끔하게 정리되면서 '웃음'을 되찾지만, 그야말로 개판이 돼버린 현실에선 어떨까? 아, 속이 뻥 뚫리는 스트라이크가 절실하기만 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