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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적 반응의 <썰전>, 그 안에 '사이다'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너의길을가라 2016. 11. 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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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백년손님 자기야> 6.7%

KBS <해피투게더> 4.7%

MBC <미래일기> 1.7%


지난 3일 JTBC <썰전>과 동시간대 방송됐던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이다. 그렇다면 <썰전>의 시청률은 얼마였을까? 놀라지 마시라. 무려 9.287%(닐슨 코리아 기준)다. 이 수치는 2013년 2월 <썰전>이 방송된 이래 최고의 시청률이면서 종편 예능의 역사를 갈아치운 경이로운 것이었다. 지상파 예능을 압도하는 높은 시청률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그건 약 80분에 달하는 방송시간을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 특집으로 꼭꼭 채워넣었기 때문이었다.


<썰전>을 향해 집중된 뜨거운 관심은 마치 '이 판국에 시시껄렁한 웃음이 웬말인가'라고 외치는 듯 했다. 분노와 허탈감, 그리고 상실감이 대한민국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예능 프로그램으로 리모컨이 움직일 리 만무했다. 또, '이슈가 이슈를 덮는다'는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의 말처럼,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해 워낙 많은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소위 정치 평론가들의 '물타기 식' 해설이 반복되는 것에 신물이 났던 국민들은 '명쾌한 정리'를 원했다. <썰전>은 그 바람과 기대에 적절히 부응했다.



▲ "저는 어느 정도는 조율했을 것으로 봐요. 청와대가 중심이 돼서 귀국 시기라든가 귀국 절차라든가 귀국 시 예우에 대한 조율이 있었을 거라고 봐요." (유시민 작가)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고 봐요가 아니고 이 전체가 잘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전부 다 말을 맞춘 흔적이 나와요." (전원책 변호사)


<썰전>의 패널인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는 최순실 씨가 사용했던 태블릿 PC에서부터 '키맨'으로 지목된 고영태 더블루케이 상무에 대해 설명하며 녹화 당시 밝혀진 사실들을 차분히 정리해나갔다. 유시민 작가는 최순실 씨의 갑작스러운 귀국에 대해서 '사전에 검찰과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전원책 변호사도 동의했는데, 그는 '조율'이라는 단어로는 부족했는지 '잘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두 사람의 의견 일치는 '최순실 게이트'의 본질에 대한 분석에서도 이어졌다. 전원책 변호사가 이 막장 드라마의 주연이 대통령이라고 말하자, 유시민 작가는 이 부분을 다시 상기시키면서 언론 보도가 '최순실 사건', '최순실 사태', 최순실 국정농단'이라 이름 붙이면서 주연 배우가 최순실 씨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전원책 변호사는 '국정농단이 핵심'이라며 "이건 최순실 게이트이자 박근혜 게이트"라고 못박았다.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진보와 보수의 일치단결'을 최순실에 해냈다고 할까?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는 다 차단한다. 이 사태를 책임져줄 사람은 가능한 중량급으로 찾는다. 최순실 등 민간인은 가감 없이 처벌하고 박근혜 대통령과 연결고리를 차단, 도의적인 책임을 지는 선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유시민 작가)


"박근혜 대통령은 바뀌지 않아요.", "대통령 진술서를 누가 써줘요, 써줄 사람이 없는데." 등 작정을 한 듯한 유시민 작가의 '효자손'과 같은 발언들은 갑갑해하던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줬다. 또, 검찰의 수사 방향을 예측하면서도 이 사건의 관계자들이 가지고 있는 반박 자료와 언론사들이 이미 확보한 자료들이 검찰의 수사를 배척하는 방향으로 표출될 것이기 때문에 그대로 가진 않을 것이라 예언하는 등 적재적소에 '사이다 발언'을 쏟아냈다. 


전원책 변호사도 초반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건강한 '보수'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듯 했다. "지금까지 우리 대통령은 인형에 불과했다. 우리의 대통령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며 열을 올리는 모습은 유시민의 것보다 오히려 시원했다. 마치 박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보수의 뼈저린 자백(自白)을 받아낸 느낌이라고 할까. 하지만 전 변호사는 자신의 포지션을 잊지 않고, "야당의 거국중립내각 주장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태클을 걸고 나섰다.



전원책 변호사의 발언들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해보자. 그가 '대통령과 소통해야 하는 참모들 사무실이 제각각 흩어져 있다'면서 청와대의 폐쇄적인 구조를 언급하는 대목은 '국정 농단'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와는 거리가 있었다. 유시민 작가는 "그게 근본 원인이라고요?"라고 거듭 되물었지만, 전 변호사의 억지 주장은 계속됐다. 이를 듣다 참지 못한 유 작가는 "솔직히 이건 좀 너무 대통령을 옹호하는 것"이라며 지적하고 나섰지만, 전 변호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게다가 뜬금없이 "문민정부 들어서 역대 대통령 중에 그런 (국민들이 당면한 문제를 정상적인 방식으로 처리한) 사람이 누가 있었어요?"라면서 "문민정부 들어와서 대통령에 합당한 지식을 가진 분이 한 분도 없었다"며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문민정부 이후의 대통령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한 부분은 누가 들어도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가 '다 깎아내리겠다'는 '모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하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태도는 이해불가였다. 더 이상 참지 못한 유시민 작가는 "왜 자꾸 물을 타세요?"라고 답답해했다.


전원책 변호사의 발언들을 곰곰히 되짚어보면서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내에서 '보수'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저와 같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 대열에 <조선일보>와 <TV조선>을 비롯한 종편 언론이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국정 수행이 불가능한 수준은 5%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나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아니 적극 가담했던 보수 세력들의 '반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손가락질과 분노뿐이다.


어찌봐야 할까? 결국 '박근혜'를 버리더라도 새누리당(당명을 바꾸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내 비박(非朴)을 필두로 한 보수의 새로운 지형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인물을 발탁해 다음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하는 '작전'으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문민정부 이후의 대통령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고 억지를 쓰는 전원책 변호사의 말은 그 작전을 공유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생각일 것이다. 이쯤되면 전원책 변호사를 두고 '보수의 품격'을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자 언어도단(言語道斷)일지 모른다.



3일 방송됐던 <썰전>에 대한 총평을 내리자면, 정국을 꿰뚫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시각과 각각의 사안들을 종합적으로 풀어내는 폭넓은 이해와 분석은 가히 '사이다'라고 할 만 했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방송 후반부로 갈수록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시사를 다루는 '예능'이라는 프로그램의 본질적 한계는 진중한 이야기를 다소 가볍게 만들기도 했고, 뒷부분의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의 하산과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를 다룬 부분은 다소 불필요해 보였다.


또, 실시간으로 변하는 상황들을 즉각적으로 담아낼 수 없는 <썰전>의 제작 현실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을 반영하기엔 무리였다. 패널인 유시민 작가와 전원책 변호사가 정보에 대한 접근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외부인의 위치에 있다는 점도 아쉬웠다. 그럼에도, <썰전>의 존재는 시청자들에게 '해갈'과도 같이 다가왔다. 단독 보도라든지 새로운 내용을 다룰 수는 없었지만, 지금까지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된 사실들을 토대로 자신만의 '분석력'과 '입담'을 더해 시청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해소시키는 것만으로도 제몫을 충실히 한 셈이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과거에 어떠했던 간에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기만 하면 '품격'을 얻는 잘못된 이분법과 그 안에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는 보수 세력의 '입담'이 갑자기 '사이다'로 둔갑하는 또 다른 변질이 아닐까? <썰전>에 쏟아진 환호를 지켜보면서 응원을 보내는 한편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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