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같은 소리로 거짓말 하는 거지. 속지 않아. 속지 않는다고! 우릴 개돼지 취급했잖아!"


지난 1일 종영한 SBS <달의 연인>의 19회에서 민란을 일으키는 후백제 유민들의 외침은 강렬하게 다가왔다. 광종의 노비안검은 의지가 분명한 것이었지만, 그동안 쌓여왔던 지도층에 대한 불신이 폭발한 탓이다. 드라마 속의 저 대사를 2016년으로 가져와 '청와대'에 들려준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후백제의 공주 우희(서현)은 "나를 어머니로 아는 백성들을 외면하진 못하겠어. 그러면 죽느니만 못하게 살 것 같아. 모두의 죄를 내 목숨으로 갚을게"라며 죽음을 선택한다. 지도자가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품격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헌법 제1조 제1항은 처참히 무너졌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제2항의 선언은 '순실'이라는 이름이 간단히 대체해버렸다. 검찰은 '몸을 추스르겠다'는 최순실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줬고, 덕분에 최순실은 31시간을 벌었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충분한 시간을 보장받고 검찰에 출두한 최순실은 "죽을 죄를 졌다"고 울먹였지만, 이내 "자신을 음해하려는 거짓말"이라며 발뺌하고 나섰다.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이자, 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는 더욱 황당하기만 하다. 박 대통령은 2일 개각을 단행하면서, 참여정부 출신의 김병준 국민대 교수를 신임 국무총리로 내정했다. 청와대 측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사실상 2선 후퇴의 뜻을 담은 것이다. 김 내정자가 내치 대통령이다." 다시 말해서 내치는 김병준 신임 총리가 맡고, 외치는 박 대통령이 담당하는 사실상의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 "앞으로도 정치적 해법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저도 중대한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

▲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도 전혀 반성하지 않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에 또 다시 분노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야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 "더이상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즉각 물러나시라"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


여전히 독선적이다. 여야와의 협의 없는 청와대의 일방적인 개각 단행에 여야는 공히 분노했다. 여당은 새누리당은 최고위원 · 중진 의원 간담회가 열리는 도중에 공개된 개각 발표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유승민 의원은 "당에서 최고·중진 회의를 이렇게 하고 있는데 (대통령이) 말씀하는 것은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또, 야권의 주요 정치인들은 사실상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나섰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즉각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도 "중대함 결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압박했다.


현재 국민들은 '최순실 국정 농단'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거기에는 '당사자'인 박 대통령 본인도 포함된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상 소추의 대상이 아닌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사(및 수사)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확대 해석이다. 퇴직 후에 기소를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증거를 수집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재직 중에 증거를 인멸할 것은 뻔한 일 아니겠는가? 결국 검찰의 수사 의지에 달린 문제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9.2%에 불과하고, '박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는 응답은 무려 67.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월 31일, <내일신문>이 여론조사 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실시) 한 자릿수 지지율의 의미는 무엇인가. 박 대통령의 전통적인 지지층마저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대통령으로서의 권한과 자격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 봐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뤄진 박 대통령의 개각은 모욕적이다.


감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고한다. 박 대통령은 알량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발버둥을 즉각 멈춰야 한다. 처절한 반성 없이 국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를 그만둬야 한다. 이제 유일한 해법은 박 대통령의 하야에 준하는 결단이고, 해법의 출발점은 박 대통령의 직위가 사실상 해제된 상태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역시 '분노'가 요구된다. 스테판 에셀이 '분노할 일에 분노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분노했다면 참여하라. 참여가 세상을 바꾸는 첫 번째 발걸음이다"라고 말했던 것을 잊지 말자.


다만, 두 눈을 부릅뜨고 사태의 흐름을 민감하게 지켜보자. 정의당을 제외한 야당들은 이제껏 몸을 사리고 웅크리고 있다가 국민적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악화되자 못이기는 척 '탄핵과 하야'를 말하기 시작했다. 한심하게도 국민들 앞에 서서 '길'을 열지 못하고, 이른바 '역풍'이 두려워 국민들 뒤에 숨어 있었다. 그 비겁함과 나약함을 기억하는 동시에 그들에게 이후의 정국을 모두 맡길 수 없음을 인식하자. 결국 향후 정국에서 시민사회의 참여는 필수적이다.



새누리당은 어떠한가. 소위 '비박'들은 자신들은 전혀 책임이 없다는 듯 '친박'을 궁지로 몰아세우고 있다. 비박계의 잠재적 대선 주자인 김무성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는 손을 맞잡고 '이정현 사퇴'를 외쳤다. 대통령에 대한 문제제기는 하지 못한 채, 고작 지도주 퇴진을 요구하는 그들의 '결기'가 놀랍기만 하다. '당명 교체'를 포함한 '재창당'을 통해 새로운 권력 놀이를 하겠다는 뜻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JTBC> 못지 않게 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 <TV조선>과 <조선일보>의 변신도 곱게 봐선 곤란하다. '가장 잘 팔리는 뉴스'에 민감한 상업성과 지지율이 떨어진 대통령을 버리고 내년에 있을 대선에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려는 영악함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결국 새누리당과 <조선일보>로 연결된 커넥션은 '정권 재창출'에 목숨을 걸 것이 분명하고, 이 과정에서 방해가 된다면 '박근혜 버리기'는 어려운 선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두 눈을 부릅뜨자. 자칫 잘못하면, 눈 뜨고 코베이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분노하면서도 냉철해지자. "맨날 같은 소리로 거짓말 하는 거지. 속지 않아. 속지 않는다고! 우릴 개돼지 취급했잖아!" 속는 것도 한 두번이지, 반복되면 속는 사람도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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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