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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과 풍자, 최순실로 인해 연예계도 꿈틀댄다

너의길을가라 2016. 10. 3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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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은 '공인(公人)'이 아니다. 전원책 변호사는 <썰전>에서 사회적 자산이라는 의미에서 연예인을 공인이라 불러야 한다지만, 그들은 단지 '유명인(celebrity)'일 뿐이다. 사회적으로 특정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들에게 왜 아무말도 하지 않느냐고 따져물을 수 없다. '결혼기념일' 사진을 SNS에 올리리고, '엄마와 여행'하는 사진을 SNS에 올린다고 해서 '이 중대한 시국에 뭐하는 거냐'고 다그치진 말자. 공인이 아닌 그들에겐 그럴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지금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같이 나라를 뿌리채 뒤흔드는 치욕스러운 사건에 대해서 그들에게 어떤 '대답'이나 '제스처'를 요구할 순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그들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말이다. 그것이 정치적 사안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민감하고 예민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마음껏 말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도 있다. 더불어 그런 '표현'들이 당사자의 '밥벌이'에 지장을 초래하는 '저급한 사회'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난 29일, 광화문 일대에서 시민들이 주도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더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자리였다. 이날 배우 신현준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 장의 사진을 게시했다. 사진 속에는 태극기를 배경으로 촛불을 들고 있는 신현준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KBS <연예가중계> 생방송 녹화가 예정돼 있어 촛불집회에 현장에 나갈 수는 없지만, 마음만은 함께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또, 같은 날 가수 '2PM'의 황찬성은 자신의 트위터에 "양파는 까면 깔수록 작아지는데 이건 뭐 까면 깔수록 스케일이 커지냐. '이 난리통도 시간이 지나면 잊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이 '주어' 없는 글이 의미하는 바를 2016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방송인 오상진은 30일 최순실 씨가 귀국한다는 속보가 뜨자, "She came. 그녀가 왔다"는 글과 함께 'Shamanism'(샤머니즘)을 해시태그로 달았다. 



한편,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필두(筆頭)로 연예계는 '풍자'의 깃발을 다시 세우고 있다. MB정부 이래 짓눌렸던 풍자의 웃음이 다시 기지개를 켜는 것일까? 웃음거리로 전락한 정치의 민낯은 조롱의 대상이고, 드라마보다 드라마틱(dramatic)한 정치의 현실은 적절한 소재가 된다. '사회의 부정적 현상이나 인간들의 결점,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면서 비판'한다는 의미는 풍자야말로 '연예(演藝)'를 다루는 사람들의 권리이자 무기인 셈이다. '칼을 빼들라!'


<무한도전>은 지난 29일 '그래비티' 편에서 박명수가 김태호 PD의 얼굴을 두고 "옛날이었으면 혹성탈출이었는데"라고 비난하자 김 PD는 즉각적으로 "지는"이라며 대응했다. 박명수가 그 말을 듣지 못하자 "정작 들었어야 할 분은 딴 얘기 중",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이라는 자막을 달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분노한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알량한 권력을 지키기 위해 '딴 얘기'를 하고 있는 '불통왕' 박근혜 대통령을 저격한 코멘트였다.


풍자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기 위한 야외 촬영에서 수백 개의 헬륨 풍선에 몸을 매단 박명수가 공중으로 떠오르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이라는 자막을 집어넣기도 했다. 날아오른 박명수가 흥분상태에서 "온 나라가 웃음꽃이 피고 있어요"라고 외치자 "요즘 뉴스 못 본 듯"이라는 시크한 자막으로 시청자들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김태호 PD의 기지가 돋보이는 장면들이었다.



<무한도전>의 행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풍자의 대열에 SBS <런닝맨>이 합류한 건 의외였다. 30일 방송된 '아바타 하우스'에서 서지혜, 김주현, 민호(샤이니) 등의 게스트들이 런닝맨 멤버들의 주인이 돼 그들을 '꼭두각시'처럼 다루는 모습은 일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두고 최순실의 꼭두각시 혹은 아바타라고 부르는 것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실제로 참 순하고 실한데"라는 자막은 그야말로 카운터 펀치와 같은 짜릿함을 선사했다. 자막이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을 넘어, 제작진과 시청자들의 또 하나의 소통 창구라는 점을 적극 활용한 속시원한 풍자였다.



급기야 30일 방송된 MBC <옥중화>에서는 '오방낭'이 직접 등장하기도 했다. 윤원형(정준호)의 첩 종금(이잎새)은 무당을 집으로 불러들여 "네가 정말 영험하더라. 앞으로 정난정을 끝내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조언을 구한다. 이때 무당은 비단 주머니를 꺼내면서 "이것이 '오방낭'이라는 것"이라며 소개한다. 그러면서 "복주머니에 든 부적이 작은 마님을 큰 마님으로 만들어 줄거다. 간절히 바라면 천지의 기운이 마님을 도울 거다"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등장했던 오방낭은 동양의 오행사상이 깃든 주머니로 주술적 의미가 있는데, 최순실 씨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태블릿 PC에서 '오방낭'이라는 파일명이 등장했던 것을 <옥중화>가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이 얼마나 유쾌한 패러디란 말인가. 시청자들의 간지러운 등을 박박 긁어주는 통쾌한 느낌이다.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과 <런닝맨>, 드라마 <옥중화>가 앞장 선 '풍자'의 흐름은 앞으로 연예계를 강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0일 국민들은 또 한번 믿을 수 없는 뉴스를 지켜봐야 했다. 최순실 씨가 30일 극비 귀국 후 건강을 핑계삼아 몸을 추스를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자, '긴급체포'를 해도 모자를 판에 검찰이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방송인 김제동은 "지금 몸을 추슬러야 할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입니다. 지금 그런 위로와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우리 국민들입니다"라며 촌철살인의 한마디를 보탰다. 31일 코미디언 박명수는 <박명수의 라디오쇼>에서 "이런 시국일수록 예능인들이 더 열심히 해야한다"며 한마디 보탰는데 정말 그 말이 옳다. 


예능인들이, 그리고 드라마를 비롯한 방송이 더욱 과감한 '풍자'를 시도하길 바란다. 시청자들에게 현 세태를 반영한 '빅재미'를 선사하길 바란다. 연예계라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인가? 방송사 사장인가? 아니다. 그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그건 '시청자'가 아닌가. 그 어떤 분야보다 훨씬 더 '여론의 흐름'을 민감하게 짚어내는 연예계인 만큼, 이미 분위기 파악은 끝났을 거라 본다. 흥미로운 패러디와 풍자를 찾아내는 재미가 생겼다. 이제야 TV보는 맛이 생겼다고 할까? 소신과 풍자, 최순실이 연예계를 강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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