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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고 치는 압수수색, 누가 <더 케이투>를 비현실적이라 했던가

너의길을가라 2016. 10. 2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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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금토 드라마 <THE K2>를 챙겨보시는 엄마가 언젠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나는 그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로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정치판의 추악한 이면을 상당히 적나라하게 포착하고 있는 '더 케이투'가 아닌가. 그런데 어떤 장면을 보고 엄마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잠깐 그 장면을 감상해보자. 



유력한 대선 후보인 장세준(조성하)은 '청춘 콘서트' 도중에 '괴한'들로부터 계란 세례를 받는다. 놀랄 필요는 없다. 이미 계획되어 있던 '쇼'였으니까 말이다. 그는 앞에 모여있던 청중과 기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지금 이분들이 제가 비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국제 금융 그룹 등 요즘 의혹을 사고 있는 일부 금융권에 대한 수사에 즉시 착수해 주실 것을 검찰에 엄중히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장세준은 자택 및 선거 사무소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행해 자신의 의혹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달라고 부탁까지 한다.  



"우린 지금 이 곳에 수색영장 강제집행하러 온 거 아니야. 자진해서 적극 수사 협조해주신 의원님 댁에 출장 온 거니까 예의들 지키세요"

"어머, 오셨어요?"

"아, 사모님. 나오셨습니까? 이거, 갑자기 폐를 끼치게 돼서 송구스럽습니다."

"아닙니다. 폐라뇨? 공무수행 중이신데, 편하게 들어오세요"


다음 날 아침이 되자 검찰은 관련 증거를 압수수색하기 위해 장세준의 자택에 들이닥친다. 잔뜩 깔려 있는 기자들과 비장한 표정의 검찰 직원들.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듯 했지만, 역시 그건 '기우(杞憂)'에 불과했다. 검사는 '예의를 지키라'고 신신당부하고, 장세준의 아내이자 JB그룹 가문의 맏딸인 최유진(송윤아)은 출장을 온, 예의 바른 검찰 직원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일단은 저희가 꾸릴 수 있는 건 다 꾸렸구요. 더 필요하시면 수색해주세요"

"아이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을, 뭐 이렇게 손수."

"아참, 아침 식사들은 하셨나요? 식당에 간단히 샌드위치 좀 준비했습니다. 넉넉하게 준비했으니까, 천천히 드셔가면서 하세요"


최유진은 한술 더 떠서 '압수수색'될 짐들을 미리 꾸려두는 '센스(?)'를 발휘했다. 애초에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게다가 최유진은 검찰 직원들에게 아침 식사로 간단한 샌드위치를 제공하는 섬세함까지 갖췄다. 최유진은 '영감님'만 따로 불러 다과를 나누며 긴밀한 대화를 나눈다. 어차피 기자들을 납득시킬 '시간'도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엄마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실제로 저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가 찼던' 모양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게 정치이고, 법과 정의는 '권력'에 봉사하는 것이 현실이 아니던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꺼림칙한 생각들이 '영상'으로 구현되니 훨씬 더 생동감 있게 와닿을 수밖에. 그나저나 누가 <더 케이투>의 시나리오를 비현실적이라 했을까. 그 말도 안된다고 여겼던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지 않은가.



지난 29일 검찰은 최순실 씨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부속비서관, 김한수 행정관, 김종 문체부 제2차관, 조인근 전 연설기록비서관, 윤전추 행정관, 이영선 전 행정관 등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했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일까.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한 검찰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과연 검찰은 '제대로' 압수수색을 하긴 했을까? 의문부호가 사라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순실의 시대'가 아닌가. 이어 검찰은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법률상 임의제출이 원칙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맞섰다. 검찰과 청와대의 힘겨루기(진짜 힘을 겨룬 것인지 의문스럽지만) 끝에, 결국 압수수색은 검사가 영장을 제시하면 청와대의 직원들이 자료를 찾아서 넘겨주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검찰이 현장에 진입해서 자료를 직접 확인하고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증거 인멸이나 은폐의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대목이다. 이런 식으로 진행된 압수수색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매우 의문스럽다. 그런데도 검찰은 "압수수색은 청와대의 협조적인 태도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고 하니, 마치 '더 케이투'의 '짜고치는 압수수색'을 다시보는 기분이 든다. 



검찰은 30일 재집행을 한다고 밝혔지만, 과연 그때까지 증거가 온전히 남아 있을까? 어쨌거나 형식적으로 압수수색은 이뤄지고 있다. 청와대가 검찰에 '협조'한 셈이니 '모양새'도 갖춰졌고, 결과적으로 '면죄부'도 내려진 셈이다. 드라마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했던가. <더 케이투>가 정치의 민낯을 이토록 낱낱이 까발릴 수 있는 건 그만큼 정치의 타락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그런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살아가는 시청자들은 드라마가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정치가 오염된 정도에 비하면, 사실 엄마의 '반응'은 뒤늦은 것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속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국 우리는 '진실'에 수렴하고야 만다. 안나(임윤아)를 향해 최유진이 했던 말이 새삼 머릿속을 맴돈다. "때로는 진실이 너무 비현실적이거든. 하지만 이게 진실이야." 머릿속을 메아리치던 그 말이 어느새 폐부(肺腑)를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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