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닥터 스트레인지>, '믿고 보는 마블'을 증명하다

너의길을가라 2016. 10. 28.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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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의 기세가 무섭다. 이틀 동안 78만 2,192명의 관객이 마블의 새로운 히어로를 만났다. 100만 돌파는 시간 문제로 보인다. <닥터 스트레인지>는 '믿고 보는 마블'이라는 신뢰감을 또 한번 상기시켰다. 이젠 확신을 갖고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마블은 영화를 잘 만든다'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마블은 DC에 비해 훨씬 더 영화를 잘 만든다최근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할리퀸' 하나만 남기는 처참한 실패를 거둔 DC와 만드는 족족 '대박'을 치는 마블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 



그건 '자기성찰'의 유무(有無)라는 생각이 든다. 마블은 자신들의 영화를 소비하는 관객들의 성향과 바람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바탕으로 경쾌한 시나리오를 얹고, 화려한 비주얼로 부드럽게 감싼다. 엄격한 개연성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수준의 유머 감각을 섞는다. 그리하여 대부분 '비슷비슷한 영화'가 되지만, 주기적으로 스펙터클한 히어로물을 찾는 관객들의 기대치에는 근접시키고 있다. 마블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이 필요한 만큼만 만든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DC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 끝없는 방황을 계속하고 있다. 그 높은 '성과'를 따라잡기엔 후발주자들의 '역량'이 부족하고, 그렇다고 마블을 흉내내며 가볍게 스텝을 밟자니 기존의 팬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그렇다고 마블처럼 매끄럽게 만들어내지도 못했다. <수어사이드 스쿼드> 제작을 둘러싸고 벌어진 잡음과 처참한 결과물은 DC가 처해있는 난맥상을 잘 보여줬다. 앞으로 <원더우면>, <저스티스 리그>, <아쿠아맨> 등의 개봉을 앞둔 DC의 행보가 여전히 불안한 까닭이다.



마블의 체계성과 영리함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돋보인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을 필두로 기존의 마블 영웅들이 악의 '물리적 위협'에 대항했다면,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법의 위협'에 대항하는 '스티븐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내세운다. 이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 MCU)의 확장이라 일컬어도 무방하다. 시공간을 초월하고, 유체이탈, 염력 등 각종 '마법'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존재는 앞으로 마블 히어로물에서 '연결고리'이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안하무인(眼下無人)한 신경외과 전문의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학술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교통사고로 두 손에 큰 부상을 당하고 만다. 신경이 손상된 그는 더 이상 유능한 의사일 수 없었고, 깊은 자괴감과 절망감에 빠지고 만다. 치료를 위해 여러 최첨단 의학에 기대보지만, 완쾌는 요원하기만 하다. 그러다 우연찮게 '카마르-타지'의 존재를 알게 되고, 네팔 카트만두로 찾아가 '에인션트 원(틸다 스윈튼)'의 제자가 된다.



에인션트 원이 보여주는 초자연적 현상을 목도한 스티븐 스트레인지는 새로운 세계, 다중 세계(멀티버스)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영리한 마블은 이 복잡한 개념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킬 마음이 애초부터 없다. 오히려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셉션>에서 구현했던 '시각적 쾌감'을 더욱 발전시켜 관객들을 매료시킨다. 현실의 공간이 해체되고, 도심의 건물들이 상하좌우 제멋대로 움직이는 장면들은 온몸을 긴장시키는 데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하다. 


물론 <매트릭스>와 <인셉션>이 쌓은 각자의 영역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영화가 가진 매력들을 한 바구니에 예쁘게 담아놓았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그것이 마블의 목표였으니,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전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아쉬운 점도 여러군데에서 눈에 띤다. 다소 진부한(좋게 말하면 평범한) 스토리 전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티븐 스트레인지가 에인션트 원의 제자가 되는 과정, 그러니까 캐릭터의 변화 과정이 상당히 뻔하다. 진부한 영웅 서사와 평범한 악, 이 대결 구도가 큰 흥미를 일으키진 않는다.



또, 여성 캐릭터의 활용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도 아쉽다. 우선, 틸다 스윈튼의 에인션트 원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였음에도 영화 속에서는 큰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채 밋밋하게 그려졌다. 원작 속에서 에인션트 원이 동양인 남성이었지만, "동양인에 대한 클리셰를 깨고 싶었다"는 스콧 데릭슨 감독의 의지에 따라 '백인 여성'을 캐스팅했다면, 좀더 설득력 있게 그려냈여야 했다. 또, 스티븐 스트레인지의 연인으로 등장하는 크리스틴 팔머(레이첼 맥아담스)도 철저히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고 말았다.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래도 <닥터 스트레인지>가 구현해 낸 세계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경이롭다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의 최첨단 영상을 넋놓고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115분이 후딱 지나가 버릴 것이다. 진정한 신스틸러인 '망토'의 활약도 숨겨진 포인트다. (쿠키 영상 2개도 놓치지 말자!) 무엇보다 BBC One <셜록>을 통해 가장 섹시한 남자로 자리매김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활약은 넋 놓고 바라보기에 충분하다. 캐릭터의 연속성을 살린 마블의 캐스팅은 또 한번 말하지만 영리했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아찔한 현실 왜곡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혼란'을 실체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닥터 스트레인지가 시전(始展)하는 마법은 정말 유혹적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니! 아, 정말 갖고 싶은 마법이 아닌가? 처참히 망가져 누더기가 된 이 세계에 닥터 스트레인지의 소환을 바라는 나의 바람이 참으로 순실(淳實, 순진하고 참되다)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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