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유해진의 <럭키>, '이런 배우는 없다'던 차승원이 옳았다

너의길을가라 2016. 10. 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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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어느 영화에도 국한되지 않아. 그러니까 이런 배우는 없어. 이런 배우는 없다고." 


tvN <삼시세끼 고창편>에서 차승원은 연기를 하는 후배들에게 '유해진'이라는 배우에 대해 말한다. 그의 말에서 동료이자 벗에 대한 자랑스러움과 함께 배우로서 또 한 명의 배우를 바라보는 '리스펙트(respect)'가 느껴진다. 차승원의 말이라서가 아니라, 동의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실제로 배우 유해진은 그 어떤 틀에도 묶여있지 않은 배우이다. 그는 희극과 비극을 아무런 이질감 없이 넘나들 수 있는 배우이고, 그 미묘한 경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배우이기도 하다. 



단지 연기의 '다양성'이나 '유연성'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깊이'의 차원이며, 그가 쌓아온 연기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문제이다. 단단한 뿌리가 굵은 줄기와 넓게 퍼져나가는 가지를 지탱하는 법이다. 그 자신을 증명하는 건,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했던가. 유해진이 쌓아올린 필모그래피를 보면, 배우 유해진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흔히 유해진을 통해 <이장과 군수>의 시골스러운 코미디를 떠올리기 쉽지만, 그는 한 가지 캐릭터에 안주한 적이 없다. 


<왕의 남자>의 육갑, <타짜>의 고광렬, <전추치>의 초랭이, <이끼>의 김덕천, <해적 : 바다로 간 산적>의 철봉 등 캐릭터의 '이름'만 들어도 유해진이 펼쳤던 연기가 머릿속에 자연스레 연상된다. 그가 어느 영화에도 국한되지 않는 '독립성'을 지킬 수 있었던 까닭은 '캐릭터'를 통해 발현되는 연기의 완성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영화들에서 가장 뛰어나고 적합한 조연으로 활약했던 유해진이지만, <소수의견>과 <극비수사> 등에서는 캐릭터를 죽이고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연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주연 배우로 발돋움한 유해진이 주연을 맡은 <럭키(LUCK-KEY)>는 우치다 켄지 감독의 <열쇠 도둑의 방법(Key Of Life, 鍵泥棒のメソッド)>을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영화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삶을 묘사하면서 시작된다. 성공률 100%의 철두철미하고 냉혹한 킬러인 최형욱(유해진)과 월세조차 낼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급기야 자살을 시도하는 찌질한 무명 배우 윤재성(이준)의 인생이 한 순간에 뒤바뀌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마크 트웨인의 풍자 소설 『왕자와 거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사건'을 처리한 킬러 형욱은 우연히 목욕탕에 들리고, '비누'를 밟고 넘어지면서 기억을 잃어버린다. 죽기 전에 몸이나 씻겠다던 재성은 혼란스러운 틈에 '목욕탕 키'를 몰래 바꿔 도망친다. 형욱이 차고 있던 값비싼 명품 시계를 떠올리고, 하루만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급진 정장에 외제차까지, 재성은 형욱으로 살기로 결심한다. 한편, 형욱은 졸지에 시궁창 같은 옥탑방에서 살아가게 된다. 뒤바뀐 환경, 뒤바뀐 사람,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괜히 '환경결정론' 같은 사회 수업시간에 배웠던 용어들도 생각난다. 



"영화 <럭키> 시나리오가 보여주는 반전이 독특하고 신선했다. 완벽하게 다른 두 캐릭터를 오가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선뜻 참여하게 되었다" (유해진)


<럭키>는 기본적으로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노골적으로 '웃음'을 이끌어내는 무리수를 두진 않는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 형욱과 재성이 처하게 되는 상황들은 자연스럽게 웃음을 유발한다. 또, '휴먼 드라마'로서의 역할도 잊지 않는다. 형욱과 재성은 다른 환경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잊고 있었던 혹은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해나간다. 재성은 의문의 여자 은주(임지연)를 알게 되면서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형욱은 구급대원 강리나(조윤희)와 알콩달콩 애정을 쌓고, 리나의 가족과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다.


눈살 찌푸릴 일 없이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은 <럭키>의 가장 큰 장점이다. '어떻게든' 따뜻하고 훈훈한 영화가 되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균형감'을 잃어버린 건 아쉬운 대목이다. 코미디와 범죄물이 혼합됐지만, 두 장르는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한 채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따로 논다는 인상이다. 또, 신(scene)마다 돋보이는 유해진에 비해 이준의 존재감은 미약하기만 하다. 이건 이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유해진의 능력치가 워낙 뛰어난 탓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유해진이라는 배우의 진가가 잘 드러나는 <럭키>는 그의 '하드 캐리'에 덕분에 '웃음'이라고 하는 1차적인 목표는 수월하게 달성해낸다. 자신의 무명 시절을 떠올리며 연기를 했다는 옥탑방 생활과 무명 배우의 모습 등 유해진의 즉흥 연기가 빛을 발하는 장면들은 관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해진'이라는 카드를 쥐고, 이 정도의 웃음밖에 끄집어내지 못했다는 점과 '왕자와 거지' 컨셉을 통해 더 다양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못한 점은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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