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여전히 강력한 선별적 복지, 무상급식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한다

너의길을가라 2016. 9. 1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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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무상급식'을 최초로 도입한 지자체는 어디일까?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아니면 투표 성향이 야권인 어느 지역을 언뜻 떠올렸을 테지만, 그러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그 주인공은 경남의 거창군이었다. 당시 거창군수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 강석진 군수였다. 그러니까 '정치권'의 손을 타기 전, 다시 말해서 '이념'이 덮입혀지기 전까지만 해도, '무상급식'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그리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거창에서 시작된 무상급식의 바람은 남해군 · 하동군 등 도내 전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초 · 중 · 고 전체 학생 44만여 명 가운데 약 64%에 해당하는 28만 5,000여 명이 무상급식을 제공받았다. 하지만 지금의 '경남'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홍준표 지사가 취임하면서 '무상급식'에 대한 기존의 공약을 뒤집으면서 극심한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홍 지사는 무상급식 지원예산 내역을 감사하겠다며 몽니를 부렸고, 이에 따라 경남교육청과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급기야 2015년 4월 1일에는 무상급식이 전면 중단되는 사태를 맞이했다. 


지난 2월, 양측이 극적인 타협을 하면서 멈춰있던 무상급식이 재개되긴 했지만, 도의 지원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 결과 경남은 무상급식 지원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이 돼버렸다. 교육부의 '2015∼2016년 시·도교육청 무상급식 실시현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체 초·중·고 대비 무상급식 지원 인원 비율은 67.6%(2011년에는 46.8%)로 나타났는데, 경남은 고작 24.3%에 불과하다. 또, 경남의 무상급식 재원 분담률은 전체 예산 2,393억 원 중 88억 원(2014년에는 307억 원)으로 3.7% 수준이다. 


1. 초 · 중 · 고 소득수준을 고려 : 대구, 울산, 경북, 경남

2. 초는 모든 학생, 중·고등학생은 소득수준을 고려 : 부산, 인천, 대전

3. 초 · 중 모든 학생, 고등학생은 소득수준 고려 : 나머지 10개 시도


포커스를 경남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보자. 인천은 이른바 '무상급식 꼴찌 도시'다. 인천의 전체 중학생 가운데 14.8%에게만 무상급식이 제공된다. 이 수치는 '소득수준을 고려'해 급식을 제공하는 타 시도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이다. 경북(52.7%), 대구(45.4%), 경남(35.4%), 부산(30.2%)는 물론 울산(22.4%)에도 훨씬 못 미친다. 다른 지역도 잘한다고 할 수 없지만, 워낙 뒤처지는 인천이 있어서 덕을 보는 느낌이다. 한바탕 '바람'처럼 지나가버려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긴 했지만, 여전히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1. 선별적 복지를 실시해야 한다 57% (국가경영전략연구원, 2015년 3월, 전국 대학생 500명 대상)

2. 선별적 무상급식 지지 63% (한국갤럽, 2015년 3월 17일부터 19일까지, 전국 성인 1002명 대상)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는 '진보 진영'에서는 '무상급식'을 아젠다로 내걸어 여러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어찌됐든 선거의 결과를 통해 명쾌하게 입증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주민투표 때문에 사퇴하긴 했지만, 투표함을 열어보지 못한 우리는 그 결과를 알지 못한다. 또, 2014년 여러 진보 교육감들이 재선됐지만, 보수 교육감들도 당선됐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의 승리라 단언하긴 어렵다.


냉정히 말하자면, 여전히 '선별적 복지'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건희 회장 손자에게도 공짜 밥을 주는 건 잘못된 거 아냐?'라는 질문은 반박하기 어려운 힘을 갖고 있다. '부짓집 애들에게 쓸 예산을 가난한 아이들에게 더 나눠주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인 것 아니냐?"는 반문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숨에 휘어잡는다. 이런 수사법은 내가 낸 세금을 좀더 유용한 곳,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극한다. '보편적 복지'의 입장에서는 이 질문들에 '대답'을 해야 하는데, 대응이 쉽지가 않다. 


진화심리학자 전중환 교수는 "아이들은 수혜의 자격을 따지기 이전에 자체로 보살핌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로 간주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봐야지, 그들의 '자격'을 먼저 생각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이번엔 민주주의의 원리를 떠올려보자.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에게 '1인 1표'가 적용되는 것처럼, 예외 없는 보편적 원리가 '학교 급식'으로도 연결되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게다가 급식(먹는 것)은 생존과 관련된 문제 아닌가? (부자들은 평균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고 있고, 앞으로도 더 많이 내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무상급식'은 '아이들의 먹을거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중 속으로 훨씬 더 빠르고 깊게 파고들 수 있었지만, 여전히 '보편적 복지'에 대한 인식은 열악하다. 가령, 지난 7월 안양옥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소득분위 8·9분위가 아니라 9·10분위(소득 최상위)까지 장학금을 지원해줘야 한다. 대학에 입학할때는 누구나 빈부격차 없이 공동선상에서 출발할 수 있도록 등록금은 국가가 마련해야 한다"고 밝히자, 당장 '차라리 그 돈으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혜택을 조금이라도 더 주라'는 댓글이 달렸고 엄청난 호응을 얻었다.



대학 등록금 문제는 좀더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 있긴 하지만, 어찌됐든 여기에서도 '선별적 복지'의 논지는 위력을 떨친다. '무상급식'과 '대학 등록금', 이 두 가지 사안에서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는 게 가능할까? 논리적 일관성을 생각한다면, 그건 상당히 모양 빠지는 일이다. 이 모순적 태도에서 '보편적 복지'가 디디고 있는 땅이 얼마나 부실한 것인지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은 언제나 약점을 절묘히 파고들고, 그 지점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8월 16일, 교육부는 "학부모 부담이 경감됐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모든 아이들에게 좋은 식재료로 영양있는 식사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시행하게 된 무상급식이 오히려 아이들이 먹는 음식의 질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무상급식'을 다시 흔들기 시작했다. '무상급식'은 진보 진영의 '보편적 복지'의 가장 핵심적인 아젠다이자, 사실상의 마지노선이다. 이를 두고 벌어지는 대립, 이 분명한 전선은 앞으로 더욱 첨예하게 진행될 것이다. 기억하자.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지면, 그 다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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