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결혼은 언제 하니?" 추석 연휴를 맞아 비혼(非婚)에 관한 단상

너의길을가라 2016. 9. 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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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언(妄言)과 실언(失言)은 옆 나라의 오만한 정치인만 하는 게 아니더라. 친지 사이에도 하지 않아도 좋을 말들이 경계 없이 오간다. 그 망언은 망언(亡言)이 돼 서로 간의 마음을 '잃고()' 더 나아가 사이를 '망()'친다. '덕담'이라는 이름으로 '무례'가 저질러지고 '상처'가 생긴다. "공부는 잘 하니?", "취업은 했니?", "연봉은 얼마니?" 끔찍한 연휴의 풍경에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이번에는 "결혼은 언제 하니?"에 포커스를 맞춰보자.


전체 혼인 건수는 30만 2,800건 (2015년 기준)

- 전년보다 0.9% 감소


여전히 결혼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장 뜨거운 이슈이다. 직업적으로 높은 성취를 이룬 아들을 바라보면서 "어머, 쟤가 왜 저래"라며 놀라며, 끝내 "장가를 가야 할 텐데.."라고 한숨을 내쉬는 엄마들을 보여주는 SBS <미운 우리 새끼>만 봐도 대한민국 사회가 얼마나 '결혼'에 집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결혼을 통해 대(代)를 이어야 한다'는 강박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 tvN , tvN 월화 드라마 <혼술남녀>는 '혼술 라이프'를 다루고 있다. 


조(粗)혼인율(인구 1000명당 혼인 건수)은 5.9%. (2015년 기준)

-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


1인 가구의 수는 520만 3,000가구(전체의 27.2%)에 달한다. 이들은 '혼족(나홀로+족(族))'이라는 '정체성'을 띠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공동체의 전면으로 부상했다. '혼밥(혼자 밥 먹는 것)', '혼영(혼자 영화 보는 것)', '혼술(혼자 술 마시는 것)'등 혼족 문화는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주된 가구의 형태가 바뀌면서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더 이상 '결혼'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인 시대가 됐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에 대한 '강요'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뤄진다. 물론 이해한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왔던 길이고, 그것이 '일반적'인 과정이었고, 그러다보니 '정상'이라고 여겨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변화는 역사에 비춰볼 때 매우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자크 아탈리는 "2030년이면 결혼제도가 사라지고 90%가 동거로 바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 웨딩인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이 32.6세, 여성은 30.0세 (2015년 기준)


초혼 연령은 점차 늦어지고 있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초혼 연령이 30대로 접어들었다. 분명하고도 명징한 현상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결혼을 최대한 (안 하거나) 미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다양하고 복합적일 테지만, 굳이 한 가지씩 꼽아본다면 미혼 남성은 '결혼 비용 부담(21.3%)'을, 미혼 여성은 '마땅한 사람을 못 만남'(24.4%)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불안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들은 결혼(이라는 제도)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여성들은 더욱 깐깐한 눈으로 배우자를 찾고 있다. 자연스레 결혼은 더욱 '전략적'인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 탓할 일은 아니다. 인류 공통적으로 '혼인'은 본래 '전략'이었다. 잠시동안 '결혼'을 '사랑'과 동일시하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기가 잠시 스쳐갔을 뿐이다. 다시 결혼은 '전략'이 됐다. 



따라서 결혼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결혼정보업체'의 위상은 더욱 커져만 간다. 회원들은 자신의 정보(직업, 연봉, 종교, 가족 구성원 등)를 입력하고, 그에 '급이 맞는' 사람들을 매칭 받는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전문직 의사 및 약사의 경우(의사 · 약사인 여성의 40.%가 동일 직종의 남성과 혼인했고, 반대로 의사 · 약사인 남성의 경우 27.9%가 동일 직종의 여성과 혼인했다)에는 직업적 '동질혼'을 선호한다고 한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동질혼'은 보편적인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한국결혼산업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학력, 경제력, 종교, 직업 등의 요소 가운데 '학력(26.5%)'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문제는 앞서 나열한 요소들이 결국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성을 띠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경제력이 높은 가정에서 학력이 높은 자녀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곧 직업과 연결되지 않던가.


ⓒ 파이낸셜뉴스


"엘리트 회원만을 위한 결혼정보를 제공해드립니다." 


이젠 '상류층(!)' 전문을 내세우는 결혼정보회사가 등장하기까지 했다. 부모의 재력이 얼마인지 대놓고 묻기도 하고, 공기업이나 공무원이 아니면 회원 등록을 받지 않는 곳도 있다. 물론 기존의 결혼정보회사에서도 회원들의 직업 등을 토대로 '급'을 나누는 행태가 존재했지만, 더 이상 이런 발상이 비밀스럽고 은밀한 일이 아니라는 게 흥미롭다. 


씁쓸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보자. 결국 앞으로 결혼(이라는 제도)은 '물려줄 것이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의 '것'을 나의 '것'에게 대물림하고 싶다는 욕망에 현실성이 있는 사람들 말이다. 반면, 이러한 관념으로부터 자유롭거나, 혹은 헬조선의 '노예'로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결혼'은 되려 족쇄인 셈이다. 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병철은 『에로스의 종말』에서 "오늘날의 사랑에는 어떤 초월성도, 어떤 위반도 없다"고 한탄한다. '진정한 사랑과 결혼을 하는' 낭만적 생각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겐 지금의 현실이 마뜩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비혼(非婚) 세대들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통해 '초월'과 '위반'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다. 


'결혼'이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만 했던 세대가 있었다. 이제 '결혼'을 '옵션'으로 여기가 다양한 선택지를 내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세대가 탄생했다. 결혼을 배제한 동거,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사는 쉐어하우스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앞선 세대가 보기에는 이를 '망조'라고 치부하기 쉽지만, 이 세계적인 보편적 현상을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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