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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검 · 김유정이 함께 하는 <구르미>와 이준기 혼자 하는 <달의 연인>

너의길을가라 2016. 9. 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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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결이라 불러도 무방할 라인업이었다. 박보검 · 김유정의 KBS2 <구르미 그린 달빛>과 이준기 · 아이유의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두 편의 드라마가 맞붙는다니! 두 작품 간의 선의의 경쟁이 얼마나 뜨겁게 타오를지, 시청자의 입장에서 흥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막상 경기에 돌입하자마자 스텝이 엉킨 한 쪽은 휘청이다 카운터 펀치를 맞고 K.O 패를 당했다. 생각보다 훨씬 싱거운 승부가 펄쳐졌다. 



<구르미 그린 달빛> : 8.3%, 8.5%, 16.0%, 16.4%.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 7.4.%, 7.4%, 7.0%


두 드라마가 거둔 객관적인 지표부터 확인해보자. 최고조에 올랐던 SBS <닥터스>의 미자막 회를 상대하느라 1회와 2회에서 8.3%, 8.5%라는 저조한 성적표(전작인 <뷰티풀 마인드>의 마지막 회 시청률이 4.7%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조하다고 보기도 어렵다)를 받아야 했던 <구르미 그린 달빛>은 3회부터 그 진가를 드러냈다. 시청률은 16.0%로 두 배 가까이 급상승했고, 4회(16.4%)까지 그 흐름을 이어갔다. 높은 화제성 지수가 향후 시청률에 반영될 것이라는 짐작이 적중한 셈이다.


한편, <닥터스>의 후광을 등에 업은 채 출발한 <달은 연인>은 1회와 2회를 연속 방송하는 초강수를 띄웠음에도 탄력을 받은 <구르미 그린 달빛>에 밀려 7.4%에 그쳤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3회부터 반전을 노렸지만, 오히려 시청률은 조금 더 하락했다. 생각보다 빨리 격차가 벌어졌고, 그 차이는 점점 더 커지고 있는 듯 하다. 문제는 뒤집기를 위한 '반등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인데, 이처럼 두 드라마의 확연한 '엇갈림'의 원인은 무엇일까?



대답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박보검과 김유정이 함께 하는 <구르미 그린 달빛>과 이준기 혼자 하는 <달의 연인>. 독보적인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자리매김한 아이유는 연기자 이지은으로 시청자 앞에 서고자 했지만, 1회부터 연기력 문제를 노출하며 드라마를 위기 속으로 몰아 넣었다. 여기에 EXO의 백현도 연기력에 비해 과분한 배역을 맡아 '자주' 등장하는 바람에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려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극단적인 클로즈업을 시도하는 김규태 PD의 카메라 기법은 과거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조인성, 송혜교를 대상으로 할 때 빛을 발했고, SBS <괜찮아, 사랑이야>에서도 역시 조인성과 공효진을 담아 몰입도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달의 연인>에서도 이준기와 강하늘은 카메라를 집어 삼킬 듯한 카리스마와 세심한 연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 클로즈업에 연기력이 현저히 부족한 '이지은'이 등장할 때, 시청자들은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채널 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 민망할 지경이다.




"아이유는 100% 캐릭터를 잘 소화했고, 깜짝 놀랄 정도로 에너지가 있는 배우였다. 이 친구는 천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적 감성이나 작품을 대하는 분석력과 해석력, 연기 디테일적 부분에 대한 계산이나 상대역의 호흡에 대해 영리하고 영민한 배우다" (김규태 PD), <뉴스엔>, '달의연인' 김규태 감독 "아이유? 100% 캐릭터 소화..천재다"


이쯤되니 기자 시사회에서 김규태 PD가 아이유에 대해 언급한 '설레발'은 독 중에서도 지독한 맹독이 됐다. 시청자들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 놓았으니 말이다. 자승자박이라고 할까. 아이유가 '이지은'으로 바뀌지 못하고 계속해서 '아이유'로 남자, 결국 <달의 연인>은 이준기 혼자(강하늘도 있지만)하는 드라마로 전락해버렸다. '짝꿍' 복이 없기로 유명한 이준기가 이번에도 오롯히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가뜩이나 상처받고 안쓰러운 캐릭터를 맡았는데, 이러한 외부적 사정까지 겹쳐져 더욱 애처롭기만 하다. 


한편, <구르미 그린 달빛>은 왕 역할의 김승수, 영의정 김헌 역의 천호진, 장내관 이준혁 등 명품 조연 배우들의 구멍 없이 촘촘한 열연 위에 두 명의 젊은 주연 배우가 바통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하며 연기를 뽐내고 있다. 3회에서는 박보검이 빛났다. '웃음기'로 채워졌던 1, 2회와는 달리 <구르미 그린 달빛>은 3회에서 본격적으로 숨겨놓았던 발톱을 드러냈다. 세자 이영이 '정치 싸움'에 뛰어들면서 가벼웠던 분위기는 사라졌고 긴장감은 배가됐다. 



세도 정치의 기세에 눌려 유약해진 아버지를 바라보는 세자 이영(박보검)의 슬픈 눈빛은 보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만들었고, 유약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짐을 나눠지겠다며 대리청정을 하겠다 나서는 이영의 당찬 모습은 가슴을 두근두근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박보검은 코믹 연기뿐만 아니라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도 자유자재로 소화해냈다. 


4회에서는 김유정이 제대로 빛났다. 가히 13년 차 여배우다웠다. 위기에 빠진 이영을 돕기 위해 자진해서 나섰던 독무(獨舞)는 2분 남짓 이어졌는데, 이영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도 훔칠 만큼 아름다웠다. 그 춤사위를 두고 엄청난 기교가 담겼다고 평가할 순 없겠지만, 캐릭터에 몰입한 김유정의 감정이 담긴 눈빛과 동작들은 진한 감동을 몰고 왔다. 배우의 기품과 자존심이 느껴졌다.


탄탄대로를 열고 있는 <구르미 그린 달빛>과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버벅대고 있는 <달의 연인>의 이토록 극명한 차이는 '캐스팅'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해수(아이유)'에게 천방지축 까부는 것 말고는 어떠한 롤도 부여하지 않은 캐릭터 설정의 실패도 패착이다) 박보검의 연기가 더욱 빛날 수 있는 건 바로 김유정이라는 배우의 존재 덕분이며, 김유정의 연기가 돋보이는 까닭은 마찬가지로 박보검이 곁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연기라는 것이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합동' 작업이며, 상대방과의 '교감'에 의한 산물임을 증명한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두 주연 배우는 그 안정적인 '교감' 속에서 시너지 효과를 불러 일으키며 강렬한 힘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달의 연인>은 가장 기본적인 균형을 잃은 채 휘청이고 있다. 다시 한번 '캐스팅'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물론 그 전제는 '돈벌이'가 아니라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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