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확 바껴 돌아온<고스트버스터즈>, 여성 4인조의 유쾌한 쇼가 시작됐다

너의길을가라 2016. 8. 3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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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편이 개봉했을 때 난 영화학교 졸업반에 다니고 있었다. 당시 극장 분위기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우리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2시간 동안 모두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우리가 원하는 목적은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게 전부다." (폴 페이그), <씨네21>, [현지보고] <고스트버스터즈> 폴 페이그 감독, 배우 멜리사 매카시를 만나다



3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1984년에 1편이 나오고, 1989년 2편이 발표됐으니 '27년'이라 해도 무방하다), 남성 4인조(빌 머레이, 댄 애크로이드, 해롤드 래미스, 릭 모라니스)가 여성 4인조(멜리사 맥카시, 크리스틴 위그, 케이트 맥키넌, 레슬리 존스)로 바꼈다. 원작의 감독이었던 이반 라이트만은 제작을 담당하고, 새로운 감독은 원작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한 폴 페이그가 맡았다. 하지만 뉴욕 한복판에 출몰한 '고스트(유령)'를 때려잡는다는 설정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그렇다,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을 사로잡았던 <고스트버스터즈>가 리부트 버전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어제 뭐했냐?"

"영화 봤어요. <고스트버스터즈>"

"어떤 영환데?"

"혹시 예전에 남자 4명이 나와 가지고, 유령 잡는 영화 기억하세요?"

"아, 맞아. 그런 영화가 있었다. 알 거 같아."

"설정은 그 때랑 비슷한데, 이번에는 여자 4명이 나와요."

"그럼 주인공들이 섹시하게 입고 나오는 거야?"


<고스트버스터즈>에 대한 영화를 설명하던 과정에서 나온 지인의 반응이다. '여자가 (4명이나) 나온다'는 설명에 <미녀 삼총사>를 떠올렸던 모양이다. 혹은 '원더우먼' 같은 캐릭터가 나와서 유령과 싸운다고 생각했든지. 놀랄 일은 아니다. 호들갑을 떨 생각은 없다. 그게 일반적인 반응이란 생각도 든다. 영화관을 찾은 어떤 관객들은 '실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고스트버스터즈>의 캐스팅이 발표됐을 때, 주인공들의 '외모'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멜리사 맥카시와 레슬리 존스에겐 다소 미안하지만) 리스틴 위그와 케이트 맥키넌의 경우에는 할리우드의 기준(이라는 게 존재한다면)으로 보더라도 '미인'의 범주에 포함될 텐데, 그와 같은 외모 지적은 상당히 의아하게 다가온다. 결국 여자 주인공의 '외모'에 대한 지적과 실망은 '얼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섹스어필(sex appeal)'의 방식에 방점이 찍혀 있는 듯 하다. 성적 매력이란 훨씬 다양한 것이지만, 미디어 등을 통해 전해지는 그것은 대체로 가슴을 드러내고, 몸매 라인을 과시하는 야시시한 옷차림에 국한돼 있다.


섹스 어필의 기준이 특정한 방향으로 일반화 되어버린 현실 속에서 그로부터 벗어난 여성 캐릭터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고스트버스터즈>는 전형성을 용감하게 탈피하고, 사람들의 기대(?)를 과감히 무너뜨린다. 폴 페이그 감독은 전작인 <스파이>에서, CIA 내근 요원 수잔(멜리사 맥카시)을 내세워 기존의 스파이 액션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보여줬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고스트버스터즈>에서도 사람들이 갖는 일반적인 선입견을 경쾌하게 걷어찬다. 멜리사 맥카시는 폴 페이그 감독이 추구하는 '전복(顚覆)'의 페르소나인 셈이다. 


<고스트버스터즈>의 네 명의 주인공은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펑퍼짐한 옷을 유니폼으로 사용한다. 카키색의 점프수트는 오로지 실용성을 강조하며, '여성화'되어 있지 않다. '여성화'되어 있지 않은 건 캐릭터들도 마찬가진데, 이들에겐 '남자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 유령을 때려 잡는 일조차 스스로 해낸다. 그건 매우 당연한 일이라 의문을 제기할 여지조차 없다. '유령은 있다', '우리는 과학자다(한 명을 제외하고)'는 신념을 끝까지 지켜나가며 편견과 맞서 싸운다. 



그 편견의 중심에 '남성'이 자리잡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대학 교수인 에린(크리스튼 위그)에게 옷차림을 지적하고 종신 교수 후보에 겆맞은 조건들을 제시하는 교수와 유령의 존재와 퇴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려던 애비(밀리사 맥카시)와 질리언(케이트 맥키넌), 에린을 학교에서 쫓아내는 학장, 뉴욕 시내를 누비며 유령을 잡는 활약을 펼친 '고스터버스터즈'를 인정하지 않고 '쇼'로 치부해버리는 시장(市長) 역할도 모두 남성이다. 아, 유령의 존재를 부정하며, 주인공들을 무시하는 등 '꼰대짓'을 하는 저명한 교수도 남성이다! 


게다가 '고스트버스터즈'의 유일한 남자 직원인 케빈(크리스 헴스워스)은 준수한 외모에 근육질의 몸매를 가졌지만,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 같이 어수룩하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영화 말미에 가서야 '전화 받는 법'을 익히는 수준이랄까. '백치미'라는 말이 어울릴 듯 싶다. 이는 폴 페이그 감독만의 '변주(變奏)'인데, 일반적으로 그와 같은 '비서' 역할을 섹시함이 강조된 여성들이 수행해 왔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좋을 것 같다. 



CG와 특수효과 기술은 30년 전과 비교해서 월등히 발전했고, 액션은 거칠 것 없이 시원시원하다. 귓가에 익숙한 주제곡 고스트버스터즈'(Ghostbusters)는 관객들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먹깨비 유령 등 원작에 등장했던 유령들이 다시 등장해 반가움을 더한다. 폴 페이그 감독 특유의 유머 코드는 호불호가 나뉠 텐데, '억지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가 엿보이지만, 어느 정도 적응이 되는 중후반부에 가서는 웃음이 피식 새어나온다. 4명의 여배우가 나누는 만담 식의 대화(아메리칸 개그 스타일?)도 깨알 같은 재미를 준다. 폴 페이그 감독과 네 명의 고스트 버스터즈들이 벌이는 유쾌한 '쇼'를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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