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어? 다 되지~"


KBS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이 지금과 달리 2~30%를 거뜬히 찍던 시절, '현대생활백수(2005년 11월 ~ 2006년 5월)'라는 코너에 출연했던 개그맨 고혜성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던 유행어다. "자장면 2,000원에 안 되겠니?"라며 기어코 자장면 가격을 깎아내던 그의 익살스러운 개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그의 유행어는 여러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활용돼 쓰였다. 당시에는 그저 웃어넘겼던 저 짧고 간단한 우스개가 이젠 새삼 달리 읽힌다. 


'우기면 된다' 정도의 1차원적인 해석에 머물기엔 뭔가 아쉽다.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은 끝까지 도전하다보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자기계발의 언어로 풀이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 앞에 '대한민국에'가 붙는다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때부터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 애초에 '되는 일'을 '안 된다'고 둘러대는 대상들의 문제로 나아간다. 뻔히 할 수 있으면서, 너무도 쉽게 '안 된다'고 벽을 쌓아버린 채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려는 태도 말이다.



그런데 그 소극적이고 회피적인 태도는 '강렬한 요구' 앞에 쉽사리 무너지고 만다.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어?"라고 외쳤던 고혜성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들의 '누진제 개편'이라는 '합리적인 요구'에 대해 별다른 고민 없이 관성적으로 '안 된다'만 반복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화가 났지만, 그보다 더 분노를 자아냈던 건, 너무도 쉽게 '된다'며 입장을 급선회한 무책임하고 무계획한 정부의 모습이었다. 


지난 9일까지만 해도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요금 누진제 완화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채희봉 에너지자원실장은 "전력 수요를 낮추려면 누진제가 필요하다. 여름철까지 전력을 많이 쓰게 하려면 발전소를 또 지어야 한다 (...) 누진제를 개편하면 부자 감세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엉뚱한 답변을 내놓아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높였다. 누진제 개편은 사회 · 경제적 변화가 반영되지 않은 현행 누진제를 현실에 맞게 바꾸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임에도 정부는 본질에서 한참 비껴서서 눈과 귀를 막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었다. 




"계절별 차등요금을 추진하고, 에너지 소외계층에 '바우처'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하자" (더불어민주당)

"누진제 1~2단계를 1단계로, 3~4단계를 3단계로 통합해 총 4단계로 축소하자" (국민의당)


리얼미터의 여론조사(8월 9일 실시) 결과에 따르면, 누진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전체의 80.9%를 차지했다.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9.1에 그쳤다. (표본오차 95% ±4.3%, 유무선 혼용방식) 누진제 개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여론을 감지한 것일까? 지난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조만간 전기요금 좋은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마자 산업부는 기존의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불가론'를 가볍게 접고, 누진제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 


그토록 강경했던 산업부의 '안돼'가 이토록 쉽게 '된다'로 바뀌게 된 건, 대통령의 한마디 때문이었고, 그 대통령의 한마디는 국민들의 지속적인 '합리적 요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습게도, 우는 아이 달래듯 던지는 '떡고물(한시적 누진제 완화 방안)'도 떨어졌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긴급 당정협의을 열어 전기요금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부터 9월까지 3개월 동안 한시적 누진제 완화 방안(누진제 구간의 폭을 50킬로와트(kWh)씩 넓히는 방식)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가정용에 11.7배의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는 나라는 없다. 정부가 왜 가정용에만 누진제를 적용하는지 국민들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려면 여러 사람이 참여한 복수의 기관으로부터 생산단가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를 하고 공감대를 얻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현행 6개 누진 단계를 절반 수준인 3단계로 줄이고, 11.7배에 달하는 누진 배율을 2배 남짓으로 낮춰야 한다" (김진우 연세대 글로벌융합기술원 특임교수)


한시적 누진제 완화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1974년 도입돼 2004년 지금의 6단계 구단로 정착된 누진제를 현실적인 수준에 맞게 뜯어고치고, 산업용 전기료를 올리는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만 전기 요금의 합리화가 이뤄질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안돼'를 고수하고 있다가 당장의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시혜성 정책'을 내놓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정부는 지금 국민들이 '떼쓰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모양이다. 그래서 '달콤한 사탕'을 하나 입에 물려주면,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고 되돌아 갈 것이라 판단했는지 모른다. 


"안 되는 게 어딨어"를 외치자 '떡고물'이 떨어지고, '사실은 되는 거였어'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런데 "안 되는 어딨어"라는 말이 통용되고, 상식이 된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건 신뢰가 없는 사회의 전형이다. '안돼'를 말하는 주체는 깊은 고민과 가능한 모든 수단을 고려하고 난 후에 매우 신중하게 '안돼'를 말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애초에 그와 같은 신뢰가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괴로울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안돼'를 의심해야 하고, '안돼'를 거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내일도 "안 되는 게 어딨어?"라고 외치며 부딪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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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버락킴 너의길을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