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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마프> 시니어들의 우정, 존재의 외로움을 떨쳐내는 완벽한 위로

너의길을가라 2016. 5. 3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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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는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살아있다"고 외치는 우리 시대 '시니어'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출연자들의 평균 연령은 63세, 그 중에서 신구(81), 김영옥(80), 김혜자(76), 나문희(76), 주현(76), 윤여정(70), 박원숙(68), 고두심(66) 등 '시니어벤져스(시니어+어벤져스)'의 평균 연령은 74세에 달한다. 이들이 주인공의 '엄마, 아빠'가 아니라 '주인공'이라니! 정말 파격적인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 <스포츠조선>


노희경은 "이들은 돈이 되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으니까. 근데 문득, 진짜 그런가, 진짜 안 보나?"라며 <디마프>를 쓰게 된 계기를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그의 필력(筆力)은 사람들의 편견을 완전히 깨버렸다. 디마프 6회는 시청률 3.874%(닐슨코리아)로 케이블 채널 일일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6회까지 평균 시청률은 4.225%로 같은 시간대에 방송됐던 전작 <기억>에 비해 훨씬 높은 시청률을 기록 중이다.


<디마프>는 '꼰대'들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그들을 '미화(美化)'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죽음'을 목전에 둔 시니어들도 눈 앞의 '욕망'을 탐하고, 내일의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이성의 문자에 가슴 설레고, 친구와의 오해로 치고박고 싸우고, 또 화해하고 눈물 짓는다. 여전히 삶의 문제들로 고민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한다. 서로에게 위로를 바라고, 그 작은 따스함에 안심한다.



노희경은 특유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다름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디마프>를 통해 '엄마'를 이해하고 되고, '아빠'를 깨닫게 된다.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돌아보게 되고, 그들이 어떤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살펴보게 한다. 또, 그들도 '누구의 무엇'이기 전에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인격체'였다는 사실을 통렬히 인식하게 된다.


<디마프>가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시청자들을 '몰입'시키는 힘은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것 아닐까? 게다가 노희경은 '이야기' 속에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배치해서, 그에 대한 고민을 환기시킨다. 가령, 완의 삼촌과 연하의 장애(障碍)라든지, 정아의 딸(순영)이 당한 가정폭력 등은 그 문제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혹은 개인의 편견을 다시 한번 되짚어볼 계기가 됐다.



'시니어'라는 틀을 가지고 접근하는 글은 이미 숱하게 나왔기 때문에 앞으로는 '관점'을 달리하는 글들을 써볼 생각이다. 가령, '<디마프>에는 유부남이 왜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가'라든지, '<디마프>에 내재되어 있는 뿌리깊은 가부장(家父長) 문화' 등은 따로 생각해 볼 만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닌가? 혹은 '<디마프> 속에서 엿보이는 여성들의 연대'는 시의적절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우정(친구)'이라는 관점에서 <디마프>를 바라볼 생각이다. <디마프>에는 세 커플의 친구 관계가 등장한다. 첫 번째 커플은 오충남(윤여정)과 이영원(박원숙)이고, 두 번째는 초반에 도드라진 갈등 관계를 보여줬던 이영원과 장난희(고두심)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뜨거운' 우정을 보여주는 건 문정아(나문희)와 조희자(김혜자)다.



1. 오충남 + 이영원


영원 "우리 집 가자. 여기 계산."

충남 "아, 이건 내가 내야 돼. 아, 얻어 먹는 거 딱 질색이야.

영원 "우리 친구 아이가?"

충남 "(활짝 웃으며) 친구 맞지."


'시니어'들을 '꼰대'라고 애써 멀리하는 오충남이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상은 친구 이영원이다. '연애' 문제를 고민하고, 젊은 애들이랑 놀다가 바람맞은 푸념을 늘어놓는 유일한 대상이다. 충남은 영원에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주저함이 없다. 또, 활짝 웃고, 아이 같은 순수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런 충남의 이야기를 영원은 '언니(드라마에선 충남이 언니다)'처럼 가만히 들어준다.


아직까지 두 사람의 '친구 관계'가 부각되진 않은 상태다. 하지만 '희자, 성재, 충남'의 삼각관계가 본격적으로 조명(照明)되기 시작하면, 영원과 충남의 우정도 비중 있게 다뤄질 것이다. 일평생을 일가친척들의 뒷바리지를 하며 보내다가 싱글 처녀로 남은 충남이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야기의 흐름상 한바탕 난리가 예상된다. 그때 영원은 충남의 영원한 친구로 옆을 지켜주지 않을까?



2. 이영원 + 장난희


영원 "완이랑 어머니는 아는데, 내가 너한테 말하지 말라 그랬어. 너 화났는데, 이거 빌미삼아 나 동정하느라고 홧병 날까봐. 배우니까 이미지도 있고. 근데, 잘 썼나?"

난희 "거울 보면 알겠네."

영원 "우리집엔 거울이 없어요. 난 내 몸 보기 싫어. 미워. 밥 먹고 가라."

난희 "그, 그러게 왜 유부남이랑 왜 지저분하게 그렇게 살어. 그러니까 그딴 병이 걸리지. 천벌 받은 거야. 알아? 할말 있어?

영원 "할말? 없지. 천벌받은 년이 무슨 할 말이 있냐. 그냥, 아팠다고. 나도 숙희 보는데, 사정이 있었다고. 그냥 말하는 거야. … 내가 숙희 이용했어. 간호할 사람이 없더라고." 


영원은 충남 말고도 난희와 또 다른 '친구'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두 사람은 한때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가 지금은 '철천지원수'가 된 사이다. 자신의 집에서 남편이 또 다른 친구인 숙희와 '뒹구는 것'을 목격한 난희는 자신의 모든 분노를 '영원'에게 투사한다. 영원이 중간에서 '농간(물론 영원에게 책임이 있는 건 분명하다)'을 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인생 조진 숙희년보다 네가 더 미워


지난 5회에서 둘은 묶은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한다. 영원은 자신의 집을 찾아온 난희에게 자신의 몸에 남은 수술자국을 보여준다. 갑상선 암에 걸려 수술했던 자국, 난소암으로 전이돼 항암 치료를 위해 짧게 자른 머리(3회에서 영원이 홧김에 머리를 잡는 난희에게 "나, 머리 잡지 마. 나 진짜 도니까"라고 말한 이유였다)를 보여주며 자신의 '왜'에 대해 설명한다. 난희는 그제야 영원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한다. '절친' 관계'를 회복한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우정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3. 조희자 + 문정아


정아 "너 왜 그랬냐? 대체 왜 죽을라고 그랬어? (…) 나랑 같이 죽자며. 너만 죽으면, 나는? 나는?"

희자 "그러네. 네가 있는데, 그치?"


'망상 장애' 진단을 받은 희자는 '치매'에 걸리면 자신의 착한 아들인 민호(이광수)도 힘들어할 것이라는 생각에 자살을 결심한다. '다행스럽게도'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한달음에 달려온 정아는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싶다는 희자를 태워가면서 "나랑 같이 죽자며. 너만 죽으면, 나는? 나는?"이라 타박한다. 그 말을 듣고 있던 희자는 "그러네. 네가 있는데, 그치?"라며 활짝 웃는다.




희자 "경찰서 가면 내가 했다고 하는 거다? 난 아무 것도 걸릴 게 없잖아. 남편도 없고." 


완의 내래이션 "이모들은 뻔뻔하지 않았다. 감히 칠십 평생을 죽어라 힘들게 버텨온 이모들을 어린 내가 다 안다고 함부로 잔인하게 지껄이다니 후회했다. 내가 몰라 그랬다고, 정말 잘못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운전 중 '고라니'를 친 것을 '사람'을 쳤다고 오해했던 두 사람은 고심 끝에 '자수'를 결정한다. 친구를 대신해 자신이 했다고 하자고 말하는 희자의 말에 정아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따뜻한 차 한잔을 더 마시고 카페를 나서는 두 사람은 두 손을 맞잡고 있었다. 경찰서에서 자신들의 '범행(!)'을 고백하던 두 사람은 여전히 두 손을 꼭 부여잡고 있었다. 




졸음을 쫓아가며 희자의 수다를 들어주는 정아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는데, '시니어'들의 '우정'도 우리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딸이 사위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아는 희자를 찾아온다. 갑자기 찾아온 친구가 부리는 이유 없는 '짜증'에도 희자는 묵묵히 모든 것을 받아준다. "희자야, 순영이가 남편한테 맞았다"며 울먹이는 정아를 희자는 말없이 안아준다. 그리고 함께 마음으로 울어준다. 



왜 나쁜(슬픈) 일은 한꺼번에 오는 걸까? 정아는 병원에서 요양 중인 자신의 엄마를 바다로 데려간다. 그 어떤 때보다 자신의 손을 꽉 잡는 엄마의 손을 느끼며 정아는 '마지막'을 짐작한다. 정아의 엄마가 막힘 없이 뻥 뚫린 바다와 그 위를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를 보며 '임종'을 맞이한 순간, 희자는 어김없이 정아의 옆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 슬픔을 나누고 공유한다. 


다정한 우정을 포기하는 것은, 이별할 때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에 묻혀 있을 보물에 대한 호기심까지 포기하는 것이다.


- 생텍쥐베리, 『남방 우편기』 -


희자와 정아를 지켜보고 있노라면, 진정한 '우정(친구)'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완벽한 위로'가 무엇인지 조금 깨닫게 된다. '존재의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는 통로가 보인다. 충남과 영원, 혹은 영원과 난희도 희자와 정아처럼 서로에게 그런 통로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어떨까? '친구'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완벽한 위로'가 되는 존재가 있는가? 아니, 그런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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