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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석 논란, 오해를 부른 발췌와 오해를 받는 표현의 자유

너의길을가라 2015. 12. 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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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text)에는 표정이 없다. 그래서 늘 오독(誤讀)의 대상이 된다. 애초에 이를 전제할 수밖에 없는 책(冊)이나 글이 휘둘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테고, 그 글의 창작자들도 이를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다. 어차피 '해석'은 읽는 이들의 몫 아니던가. 하지만 '말'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가 꼬집었던 것처럼 일부 연예부 기자들은 '받아쓰기' 수준의 기사를 써냄으로써 '밥벌이'를 한다.


방송의 내용을 실시간(혹은 시간차)으로 옮겨적고, 그것을 '기사'랍시고 인터넷에 버젓이 게재하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이던가. 거기에 자극적인 제목을 덩그러니 달아버리면 매혹의 클릭질은 담보된다. 하지만 텍스트에는 표정이 없다. 표정이 있었던 말이 표정이 삭제된 채 글로 옮겨지면 '오해'가 발생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섬세한' 표현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그런 노력(을 기울일 이유도 없거니와)이 따를 리 없다.



뜨거운 이슈로 떠오른 방송인 이윤석의 정치적 발언에 대한 논란은 어떨까? 우선, 흐름부터 정리해보자. 지난 9일 TV조선 <강적들>에서 이윤석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개인 견해를 밝혔고, 이에 대해 일부 시청자(네티즌)들이 강한 불쾌감을 표현했다. 기자들이 이를 포착했고, 논란은 일파만파 번졌다. 이윤석의 과거 발언도 새롭게 조명됐고, 급기야 KBS1 <역사저널 그날> 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온 것이다. 


도대체 이윤석은 '어떤' 발언을 했던 것일까? 이 정도로 논란이 될 만큼, 혹은 비난을 받을 만큼 잘못된 발언을 한 것일까? 대부분의 언론이 이윤석의 발언을 '인용'하는 수준은 다음과 같다. 아래의 뉴스를 확인해보도록 하자. 



이윤석은 지난 9일 종합편성채널 TV조선 <강적들>에 출연, 새정치민주연합의 내부갈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신이 야권을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전라도당이나 친노당이라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처럼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기존 정치인이 싫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이윤석 친일파·야당 발언 논란, 하차 운동으로 번지나


이윤석이 방송 중에 새정치민주연합을 '전라도당', '친노당'이라고 표현했던 부분이 논란의 핵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다짜고짜 앞뒤 자르고, 발언의 일부만을 놓고 비판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역시 제대로 들여다보기 위해선 해당 방송 부분을 찾아봐야 한다. 다음은 관련 유투브 영상이다.



"이 야권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전라도당이나 친노당이라는 느낌이 있어요. 너무 오래됐어요, 그 이미지가. 저처럼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은 일단 기존의 있었던 정치인하면 싫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전면전 치를 수 있도록 남의 군사 빌려서 한번 전쟁 치르는데 시원하게 치를 수 있도록 한번 해준다면 저 같은 사람들은 상당히 많이…"


편집된 텍스트가 아니라 '표정'까지 들어간 말을 들어보면, 이윤석의 발언에서 문제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비하(卑下)의 뉘앙스를 찾기도 어렵다. 또, 새누리당이 '경상도당'이라는 이미지(그것이 단순히 이미지인지는 모르겠지만)가 있는 것처럼, 새정치민주연합도 '전라도당'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지역주의를 타파해야 한다는 당위에 부합되지 않는 발언이라고 볼 수는 있겠지만, 현실을 직시하고자 하는 목소리로 생각한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친노당'이라는 표현은 어떠한가. 조중동을 비롯한 종편이 거듭 씌워버린 굴레라고 볼 수 있지만,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말까지 그릇되다고 할 순 없다. ""친노당"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이종걸 원내대표가 자조적으로 당내에서도 쓰는 말이고, "전라도당"이라는 표현이 거슬린다면 문재인 대표도 부산에서 본인이 정치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설명하면서 썼던 표현"이라는 이준석의 지적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논란은 논란을 낳는다고 했던가? 기존의 논란에 덧붙여져 과거 이윤석이 친일파 청산과 관련해 했던 발언도 도마 위에 올랐다. 어떤 내용인가 보니 "친일파 청산 실패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안타까워했다. 다만 지금 와서 환부를 도려내고 도려내다 보면 위기에 빠질 수 있으니 상처를 보듬고, 아물도록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대한민국 현대사에 오점으로 남아, 그 폐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이라도 친일파(의 후손)를 척결하자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지만, 이윤석의 말처럼 유보적인 혹은 통합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이를 두고 '친일파를 옹호했다'고 못박긴 어려운 측면(그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는 있지만)이 있다. 


이런 발언을 두고 이윤석의 역사의식에 문제가 있고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기 때문에 <역사저널 그날>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것이다. "우리를 이만큼 살게 해준 분"이기 때문에 역대 대통령 가운데 박정희를 가장 좋아한다는 이윤석은 굳이 따지자면 보수적인 정치관을 가진 것으로 해석된다. 전반적인 발언들을 놓고 봐도 그렇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윤석의 발언을 이유로 그를 방송에서 내쫓으려는 시도는 동의하기 어렵다. 과거 MB정부가 들어섰을 때, 그와 정치적 견해가 조금이라도 다른(혹은 달라보이는) 사람들을 방송에서 강제적으로 하차시켰던 예를 숱하게 봐오지 않았던가. 그런 '권력'을 지니지 못한 대중들은 다른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여론'이었다. 


지금 이윤석에게 가하고 있는 '여론'이라는 방식의 타격은 속좁은 권력자가 위에서 찍어누르던 그 힘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특정한 이슈에 대해 다른 생각을 견지한다고 해서 그를 사라지게 할 권리 같은 건 누구에게도 없다. 다만 '비판할 권리' 정도가 있을 뿐이다. 그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면,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될 일이다. 


그런 과정 없이 '너 싫으니까 꺼져' 수준으로 대응하는 것은 지켜보는 입장에서 속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대방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할 때, 나의 표현의 자유도 지켜질 수 있는 것이다. 조금 다른 생각에 대해 '배격'이 아니라 '설득'하려는 자세를 유지할 때, 사회는 조금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윤석에 대해(내가 싫어하는 것에 대해) 우리가 180도 다른 태도를 보여줘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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