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상투적이고 허술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영화

너의길을가라 2015. 11. 2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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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막작전(煙幕作戰)'이라는 말이 먼저 떠오른다. 아니, 작전이긴 한 걸까? 혹시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닐까?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이하 <열정같은>)를 보고 난 소감이다. 영화에 대한 부정적인 (뉘앙스의) 글을 쓰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같은 날(25일) 개봉하는 <도리화가>가 '수지'를 앞세워 포털 사이트 메인에 하루에도 몇 개씩 기사를 걸며 엄청난 홍보전을 벌이는 가운데, 비교적 조용히 개봉을 준비했던 아담한 영화에 '쓴소리'라니!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열정같은>은 '막 신문사에 입사한 사회 초년생의 고군분투기'를 표방(標榜)하고 있다. 처음엔 분명히 그런 장면들이 등장한다. 스포츠 신문사 연예부 수습기자로 입사한 도라희(박보영)는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시한폭탄 같은 상사인 부장기자 하재관(정재영)에게 출근 첫날부터 머리부터 발끝까지, 심지어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 


마치 쥐 잡듯이 몰아치는 정재영의 (코믹하면서도) 사실적인 연기는 순간적으로 몰입도를 끌어올리고, 작은 체구에 큰 눈망울을 가진 박보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쓰러운 감정이 저절로 들게 만든다. 함께 입사한 수습 동료들끼리 술자리를 가지며 '인턴'의 비애를 털어놓기도 하고, 서로를 북돋아주기도 하는 모습들도 잠깐 등장한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언론은 '열정같은', 월요병 앓는 직장인을 위한 영화 라는 식으로 홍보를 한다. 과연 기자가 영화를 보고 글을 쓴 것인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보도자료'를 베껴 쓴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배우들과의 인터뷰도 '직장'에 대한 이야기로 초점이 맞춰진다. 의아하다. 한편으로 이해가 간다. 그만큼 '홍보의 포인트'를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가장 공감대를 형성하기 쉬운 '직장'을 통해 관객들을 끌어모으려는 생각 아니었겠는가?


<열정같은>이 정작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기자들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황색 저널리즘'이라는 비판과 조롱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기레기'라는 비아냥이 기자들을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되어버린 언론의 현실 속에서 이른바 '곤조'를 가진 기자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그들이 어떤 '딜레마'를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해 '찌라시' 급의 기사들과 자극적인 제목으로 낚시를 하는 언론사와 기자들을 이해해주길 바랐던것일까? '단독'과 '특종'을 잡아내라는 상사의 압박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정당화려는 것일까? 먹고살기 위해서,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한 것일까? <열정같은>은 애매한 노선을 달리며 질척거린다.


무엇보다 시나리오의 허술함은 더욱 힘을 빠지게 한다. 코미디 영화라는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갈등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헐겁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긴장감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이야기 구조가 촘촘하게 짜여져 있는 <내부자들>을 보고 난 여파일까? 소속 배우를 성폭행범으로 몰아 붙잡아두는 등 영화 속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악역인 장 대표(진경)의 허술함은 화가 날 정도다. 게다가 그걸 눈치채는 게 수습 기자 한 명뿐이라니!




한 보따리 이야기를 풀어놓고나서 매듭을 지을 수 없을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SNS를 활용한 문제 해결'은 상투적일 뿐더러 무책임할 정도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두고 '재미없다'고 말하긴 어렵다.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영화를 감상한다면, 적당한 정도의 재미를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박보영은 여전히 귀엽고, 정재영의 원맨쇼와 오달수의 코믹 연기는 몇 번의 빅재미와 소소한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한마디만 하자. "직장인을 위한 영화 같은 소리 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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