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듣는 귀

아동학대의 최대 가해자, 계모? 어린이집 교사? 오히려 친부모였다

너의길을가라 2015. 5. 25. 11:16
반응형



8살의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했던 '울산 계모'와 역시 8살의 의붓딸을 학대하고 폭행해 숨지게 한 '칠곡 계모'는 대한민국 사회를 엄청난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아동에 가해지는 학대와 폭행에 대해 대중들이 훨씬 더 민감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계모들'이 행한 학대와 폭행의 내용들이 경악할 만큼 충격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가령, 울산 계모의 경우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는 딸의 머리와 가슴을 주먹과 발로 때려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렸다. 안타깝게도 아이는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호흡곤란과 출혈로 인해 숨졌다. 칠곡 계모는 주먹으로 딸의 배를 여러 차례 때리고 복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죽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언니인 첫째 딸에게 "네가 동생을 죽였다고 하라"며 허위 진술을 하도록 강요했다.



사람들을 더욱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첫째 딸이 알린 수많은 학대와 폭행의 진실이었다. 집에서 화장실을 가게 되면 소변과 대변이 묻은 휴지를 먹어야 했고, 욕조 속에 가둬 물고문을 당했으며, 이틀 동안 굶은 상태에서 청양고추를 10개 먹어야 했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경악스러울 지경이었다.


언론과 방송에 보도된 내용들을 활자로 축약해서 옮기는 것만으로도 충격과 경악은 최대치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중들의 '분노'를 극한으로 이끌었던 것은 약간의 불순물이 개입된 탓은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당시(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언론 보도의 초점이 '계모'와 '의붓딸'이라고 하는 조금 남다른 관계에 지나치게 맞춰졌기 때문이다.



계모(繼母) : 아버지가 재혼하여 얻은 아내
의붓딸 : 재혼한 배우자가 데리고 들어온 딸


'계모와 의붓딸'을 떠올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쁜 계모'와 '불쌍한 의붓딸'을 연상한다. '계모의 학대'는 매우 익숙한 형식이자 구조이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의붓딸과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접해왔고, 그 의붓딸에 철저히 감정이입을 해왔기 때문이다. '콩쥐팥쥐'는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서양도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신데렐라'를 보라!


'계모'에 대한 편견을 심어줄 가능성이 다분(多分)한 그런 이야기들을 엄마로부터 혹은 선생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들어왔고, 나중에는 그림책과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스스로 읽고 보면서 그러한 편견들을 점차 인이 박힌 채 성장하게 됐을 것이다. 단언할 수 있다. '계모'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교정(矯正)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너희 새엄마는 안 때려?"

"친자식도 아닌데, 그렇게 살뜰히 챙기겠어?"

"친엄마도 아닌데, 애를 사랑으로 키우겠어?"

"아무래도 친엄마에는 못 미치지"


이렇듯 고정되어 버린 시선들이 '재혼 가정'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새로운 출발, 새로운 기대로 가득한 한 가정에 쏟아지는 불편한 시선들은 오히려 그들을 경직시킨다. 혹자들은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이던가?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한번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경기(驚氣)를 일으키는 법이다.



'나쁜 계모'에 대한 잠재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우리의 뇌 속에 '울산 계모', '칠곡 계모'라는 네이밍( naming)은 분노를 극대화하기에 충분했다. 또, 편견과 선입견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난 24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발표한 '2014년 시도별 아동학대 현황'(잠정치)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지난해 아동학대로 판정된 건 수는 1만 27건에 달했는데, 그 가해자의 77.2%가 친부모였다고 한다.


아동학대의 가장 많은 가해자는 계모도 아니고, 어린이집 교사(2.9%)도 아니라 친부모였던 것이다. 물론 이런 통계에는 한 가지 숨겨진 포인트가 있다. 그건 친부모-친자식 관계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수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통계적으로도 많이 잡힐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계모(계부 포함)에 비해 사랑이 넘쳐 흘러야 할 '친부모'가 아동 학대의 중심에 서 있다는 점은 불편한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칠곡 계모 사건, 울산 계모 사건이 언론에 도배가 됐을 때와 인천의 한 어린이집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됐을 때 사람들은 '계모'와 '어린이집 교사'를 타깃으로 삼아 인격모독에 가까울 정도의 비하 발언들을 쏟아냈다. 그것이 소수, 극히 일부의 계모와 어린이집 교사의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히려 아동학대에 있어 가장 위험한 존재는 '친부모'였음에도.


아동학대의 77.2%가 친부모에 의해 자행된다는 통계 자료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계모' 혹은 '어린이집 교사'라고 하는 네이밍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묵인되고 있던 진실은 무엇일까? 불편하지만, 씁쓸하지만 우리가 마주해야 할 진실은 우리가 되짚어보고 점검해야 할 건 정작 타인의 아니라 '나'의 가정이라는 사실 아닐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