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킴의 극장

<소원>,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피해자의 미래를 생각하다

너의길을가라 2013. 10. 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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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소원>은 무엇보다 참 마음이 아픈 영화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시종일관 아동 성폭행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입장을 보여준다. 아니, 관객들은 어느덧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에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참 아프다.

 

사실 엄격히 말하자면 <소원>은 영화로서의 재미는 뛰어나지 않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고, 감정의 진폭도 그다지 심하지 않다. 그 말은 '작위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감정의 과잉을 통해, 관객들의 눈물을 뽑아내는 것이 감독의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이야기해준다. 고통을 과장하지도 슬픔을 강요하지도 않고, 그저 담담하게 영화는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이준익 감독은 '범죄 가해자에 대한 고발이 아닌 피해자의 미래'에 중점을 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서 <소원>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이 사건의 충격으로부터 어떻게 벗어나는지, 혹은 어떤 과정과 노력을 통해 일상으로 복귀하는지에 집중한다. 물론 법정에서의 장면들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 법에 대한 분노를 자아내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판사와 가해자(피고인)와 그 변호사를 악(惡)한 비주얼이 돋보이도록 한 측면이 있지만, 이 또한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의 시선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리라.

 

 

 

사건이 벌어진 지 불과 며칠 지나지도 않았음에도, 성폭력 피해자는 사건의 한복판에 다시 들어가야만 한다. 가해자를 검거하기 위해선 피해자가 사진 대조를 통해 직접 지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법정에서 그 끔찍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진술을 해야만 한다.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리라. 물론, 우리는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정말 죄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만 한다.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이러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피해자의 확실한 진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피해자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보호 장치들도 강화되었다. 하지만 그 지옥 같은 기억을 극복해야 하는 건, 오로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몫이라는 것은 그대로인 것 같다.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그다지 따뜻하지 않아 보인다. 영화 속에서 소원(이레)말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피해자를 위한 지원 대책들도 현저히 부족하다. 내 아이만 무사하면 된다는 생각들이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소홀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에서도 잘 묘사됐지만, 가해자들에겐 빠져나갈 구멍이 꽤나 많다. 심신미약을 주장해서 형량을 낮출 수도 있고, 재산이 많다면 '합의'를 해서 무마할 수도 있다. 형기를 마치고 나왔을 때, 이들이 다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를 확률은 상당히 높다. 전자발찌를 찬 상태에서도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온다. 단순히 CCTV를 많이 달고, 경찰의 수를 늘리는 것이 해법이 아니다. 병들고 썩어가고 있는 사회를 치유하지 못하면,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면 이런 끔찍한 일들은 계속해서 벌어질 수밖에 없다. 범죄자들에 대한 화학적 거세도 분명한 해답이 아니다. 오히려 범죄자들에 대한 교화, 출소 이후의 철저한 관리가 중요하다. 이쯤되면 나오는 뻔한 변명은 '인력이 부족하다', '예산이 없다'는 것일 텐데, 언제까지 국민들이 정부의 이런 변명을 들어야 하는 걸까?

 

 

 

사건을 겪은 후, 소원이는 할머니가 말버릇처럼 '아이고 죽겠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고 말하면서, 그 말이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을까?'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영화평론가 김지미의 말처럼 가장 '저릿저릿'한 장면이다. 소원이가 소아정신과 전문의 정숙(김해숙)과 나누는 대화들이야말로 『소원』의 가장 핵심적인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마 많은 인터뷰를 통해 아동 성폭행 피해자들의 심리를 잘 묘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록 대중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지만) 설경구의 연기는 가장 적절하고, 가장 완벽했다. 소시민의 삶을 연기하는 데 있어 설경구를 따라갈 배우는 없을 것이다. 엄지원도 참 많이 고생을 했다. 살을 찌우기도 했고, 화장기 없는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다. 친구로 등장한 김상호와 라미란의 역할도 중요했다. 따뜻한 친구, 이웃의 존재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줬으니까.

 

 

영화는 '희망'을 이야기하며 끝맺음 하고 있지만, 몇 년 후에도 소원이의 삶에 '희망'과 '웃음'이 가득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오히려 비관적인 생각들이 앞선다. <소원>은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은 생각들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눠야 한다. 소원이와 그 가족들이 안고 있는 저 무거운 아픔을 그들만의 것으로 방치해선 안 된다. 그건 분명하게도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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